[콩트] Blackbird fly |최대환|

You’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be free
Blackbird fly Blackbird fly
Into the light of the dark black night
— The Beatles, <Blackbird>

저녁 노을이 질 즈음 빌딩의 옥상에 올라와 있으면 기분이 묘해지는 걸 느낀다.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가 어둠 속으로 채 잠기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에 맞추어, 내 마음 속에서도 한낮의 부산함에 눌려 묻혀 있던 감정들이 따라서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외로움과 같은 감정들은 한낮에 거의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빌딩 옥상에 올라왔을 때 사르르 외로움이 느껴지면, 이런 류의 감정이 내게 있었던가 할 정도로 묘한 신선함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날도 나는 늦게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을 일단 제쳐두고 저녁 시간을 틈타 20층짜리 건물인 우리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주 전쯤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는 특별한 목적도 가지고서. 그런데 거의 언제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곤 하던 그 장소가 그날은 그렇질 못했다.
여자는 어느새인가 내가 서 있는 난간으로부터 옆으로 열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서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 빌딩에 계세요?
– ….
약간의 웨이브를 넣은 길지 않은 머리를 한 여자, 대답도 없고, 내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방해 받기 싫은 모양이군, 하고 생각하며 나 또한 고개를 되돌려 도시를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 난 특별히 사는 곳이 없어요,
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여자가 대답했다.
– 네에…
순간 나는, 그렇다면 행려병자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의 옷차림이나 깔끔한 머리 스타일로 봐서 그렇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동안 나도 여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있던 사이, 나는 특별히 사는 곳이 없다는 여자의 말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이 내 속에서 조금씩 커져 가는 것을 느꼈다.
– 그럼 참 자유로우시겠군요.
나는 여자의 거처에 대한 호기심을 그렇게 우회적인 물음으로 해결해 보려 했다.
–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자유는 믿음 여하에 따른 거니까.
– 믿음…이요?
– 그건 그렇고 이곳에 와서 무슨 생각에 그렇게 잠겨 있어요?
– ….
– 뛰어내리러 올라온 건 아닌 듯하고…
나는 도리어 내게 질문을 던지는 여자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실은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사라져 버려서요.
처음 만난 여자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조그만 목소리에 그윽한 눈빛을 가진 여자에게 이끌려 들어가듯 나는 이미 자연스레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 녀석은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었고, 야근이나 철야가 없는 날이면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가정적인 남자였죠. 뭐 특별히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특별히 불행할 이유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가 아무런 자취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어요.
– 그랬군요….
– 경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어떠한 자취도 발견할 수 없었죠. 그의 아내 또한 거의 자포자기하는 상황에 이르렀구요. 다만….
– 다만…?
– 에이, 아니예요. 그런 건 단서라고 할 수도 없는데요, 뭘.
– ….
나는 잠시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생각해 보다가, 기왕에 시작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자가 궁금해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을 이었다.
– 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같은 사무실 동료였다는데,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대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못되는 것이, 빌딩에서 뛰어내렸다면 주변에서 시신이라도 발견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 사이 여자는 어느새인가 다시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자가 올려다보는 하늘 위로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검은 하늘을 날아가는 검은 새가 어떻게 그토록 뚜렷이 보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검은 새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날아서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다.
–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자유는 없어요.
시선은 멀리 사라지는 새에게 붙박은 채로 여자가 조그맣게 말했다.
– 그렇긴 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뛰어내릴 수도 없고.
어린아이처럼 내가 대꾸했다.
–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여자가 빌딩 아래를 굽어보며 물었다.
난, 어떻게 되긴요, 하고 읊조리며 따라서 난간 밖으로 허리를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아래로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온통 뒤엉켜 흐물흐물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나는 현기증에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마치 아래로 빨려 내려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어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야 했다.
여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자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곧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러자 아까처럼 검은 새 한 마리가 높은 하늘 위에서 아른아른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서서 그 검은 새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이런 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 때 꿈을 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앞에 완전히 자신 있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일들을 한두 가지씩은 간직하고 살지 않을까 싶다.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고, 따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쉽게 설명할 수도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편안하고 나른하게 느껴지는 그런 일들 말이다.

* 소설가 최대환은 소설집 <<클럽 정크>>를 펴냈다.
(20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