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이산가족 상봉이 남긴 것 |김원일|

지난 8월 15일부터 나흘 동안 7천만 겨레의 눈시울을 적셨던 이산가족상봉 화면을 보며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텔레비젼 보기가 괴로워 더러 화면을 끄곤 했다. 8.15 상봉에 대해 한 마디 써달라는 신문사의 원고청탁과 텔레비젼의 출연 제의를, 내 심경이 너무 괴로워 지금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월북자를 아버지로 둔 집안의 장남으로서 겪어야했던 50년의 상처와 후유증이 아직도 내 속에 완강한 똬리를 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울에 온 북한 주민은 북에서 비교적 안정된 신분으로 살고 있어 조금 덜했지만 평양 유정호텔에 나온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대체로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여위었고, 손마디가 거칠고, 빠진 이빨조차 틀니를 제때 교체 못한 주민이 많았다. 생활 형편의 어려움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남측이 찍은 양측 가족상봉 화면 중 가장 낮 뜨거웠던 장면은 북한 가족으로부터 받는 선물, 북한 가족에게 줄 선물의 포장을 풀게 하여 이를 비교함으로써 그 차별성을 돋보이게 한 장면들이었다. 북한의 경제적 낙후성과 인민의 고난스러운 삶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기에 그들이 가져온 선물은 획일적이고 간소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비해 남한은 개인마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라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했다. 남한 가족이 북한 가족 손에 시계를 채워주고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을 보는 내 얼굴이 화끈했으나, 천민 자본주의의 알량한 선심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화면을 보며 가정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남한측 관점으로는 안정된 수입으로 의식주에 걱정이 없고, 제 집과 승용차를 가지고, 컴퓨터·에어컨·냉장고에서부터, 비디오·오디오·카메라 등 각종 문명의 이기를 갖추고 살며, 가족 구성원이 제 일에 충실할 수 있다면 행복한 가정이라 할 것이다. 남한 중산층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중산층 위쪽으로는 소수의 특권층이 있고, 중산층 아래쪽으로는 빈곤층이 긴 띠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아래 마지막으로 생계 해결이 늘 급박한 절대빈곤층(약 3백만 명으로 추산)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삶이란 그 경계가 수시로 허물어지고 계급의 이동이 가능하게 열려 있다. 그러나 안정된 사회일수록 계층간의 벽이 두터워 계급이나 신분의 이동이 결코 쉽지 않다.
60년대 중반까지 만해도 북한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줌으로써 교육과 의료 혜택은 물론, 세금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복지국가로 선전되어졌다. 그러나 국가 경제 체계의 관료주의 속성, 통제와 간섭, 획일화가 빚어낸 개인의 창의력 발산 등으로 발전은커녕 퇴보의 되풀이 끝에 90년대에 들어서는 전 인민을 생존의 극한까지 내몰아 국제적인 구호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는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의 참상을 텔레비젼을 통해 보아왔다. 잇달아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접하며, 시장 경제의 승리와 아시아 네마리 용으로 부상한 우리의 경제 성장에 흐뭇해했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향락 산업은 끝없이 팽창되었으며, 외국인 노동자에게 험한 일을 맡기고, 누구나 졸부 행세에 나서서 달러를 뿌리며 해외 여행에 열을 올렸다.
삶의 질에서 남한은 분명 북한을 이겼다. ‘남한에서 국민의 삶은 북한에서 인민의 삶보다 행복하다’란 명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행복’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33년 동안 0.75평의 독방에 수감된 끝에 99년 2월에 출소하여, 9월 2일이면 그가 꿈에도 그리던 조국과 가족을 찾아 북한으로 돌아가는김동기 씨의 말이 이상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인간이 권력과 부를 무기로 삼아 인간을 박해하는 세상을 거부한다. 나는 서울 일류 호텔들의 넘쳐나는 풍요와 방만을 경멸한다. 나는 그 풍요 속에서 지옥을 보았다. (「시사저널」, 9월 1일자, 9쪽)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내다보니 그 동안 엄청나게 변해버린 넓은세상을 보기에는 외고집과 소아병적인 발상일 수밖에 없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자기 신념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돌아가는 마당이니 강철 같았던 신념의 재확인을 위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연민의 눈길을 보낼 수도있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나 몸의 행복이 아닌 정신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김동기 씨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수도 있다는 수긍 또한 하게 된다.
미국의 억만장자가 행복하냐, 인도에 가면 흔하게 방치된 거리의 노숙자가 행복하냐는 하나의 잣대로 잴 수는 없다. 우리 어릴 적은 가난했어도 자연이 얼마나 풍요로웠고 이웃이 정답고 가정이 우애로 넘쳤냐는 늙은이들의 회고담도 행복의 척도를 삶의 풍요에만 두지 않으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도, 예수도, 공자도 부유함이 오히려 행복의 장애가될 수 있다는 교훈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파했다. 그들이 삶의 궁극적 지향점을 두고 주장한 도덕적 윤리적 인간이란 물질적인 부와는 별 상관이 없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이 비록 가난할망정 자본에부패되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강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 국방위원장은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남한이 경제를 맡으면, 북한은 정신으로 맡겠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통일의 걸림돌은 이제 어느 이념이 더 옳고 그르다는 주장의 맞섬이 아니다. 남북이 아직도 그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금새 무너질 가변성이 상존한다. 북한이 시장경제의 질서를 배우고, 인민의 생활을 통제에서 자유로 푸는(김동기 씨의 반대 주장이 북한 사회에서도 용인되는 자유까지 포함해서) 변화를 공부할 동안, 남한은 물질로부터 진정한 정신의 자유로움, 권력과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추적에서 비우고 베푸는삶, 도덕과 윤리, 청빈과 인격이 존중받는 인본 교육에 대한 재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리라 본다. 남북의 상호 존중과 진정한 화합이란 서로 그런보완을 통해 불신의 벽을 허물고 적대감을 해소하는 길부터 닦아나가야만 통일의 길에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비용에 몇 조 원이 소용된다는 수치 풀이는 그 다음 문제이다.

* 소설가 김원일은 <<어둠의 혼>>에서 <<마음의 감옥>>에 이르는 여러 소설집, <<노을>>에서 <<가족>>에 이르는 많은 장편소설, 그리고 대하소설 <<불의 제전>>과 <<늘푸른 소나무>>를 펴냈다. <<김원일 중단편 전집>> 5권이 엮여져 나오기도 했다.
(200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