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폭우 |정은숙|

아무도 없는 휴일 사무실
창문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이
바닥에 무늬를 남겼다.
사람들의 비애와 낙담이
얼룩진 바닥에 남긴 기묘한 상형문자.

자세히 읽어보면 시간이라고도
또는 돈이라고도 읽히는 그것.

출근한 사람들의 한숨이
빗물이 마를 때까지
잘 지워지지 않을 듯.

비 오는 휴일에 갈 곳 찾지 못한 사무원
조용히 들어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발자국만 남긴다.
시간을 어쩌지도 못하고 돈도 없는
그가 바닥의 무늬만 덧칠할 뿐.

비는 매일 출근자의 마음으로 왔다가
밤 늦은 시간, 퇴근자의 마음으로 갔다.
도시에, 불모의 도시에 폭우가 내렸다.
비가 왔다간 자리는 비의 마음으로 남아 있다.
멀리 보이는 길이 때론 가깝게도 보인다.
* 정은숙 시인은 시집으로 <<비밀을 사랑한 이유>> <<나만의 것>>을 펴냈다.
(200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