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시장과 도서관 |최수철|

요즘 들어 대형 서점에 들를 때면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도서 뿐만 아니라 씨디와 문구류도 함께 파는 경우도 있어서 더더욱 그렇겠지만, 한 마디로 번화한 시장의 한복판과 다를 바 없다. 그 때문인지 내게는 진열되어 있는 책들도 달리 보인다. 이제 책들은 정신적 노력의 결정물로서 독자들의 마음에 닿을 기회를 조용히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각기 그럴듯하게 겉을 치장하고서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어떤 것들은 소리를 질러대거나 자해공갈단처럼 위태롭게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철이 들기 전에 가졌던 터무니없는 욕망들 중의 하나는, 집 근처에 있는 책방 하나를 통째로 가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밤중에 텅빈 책방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접하기 어려웠던 책들이나 내게 금지되어 있는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만지고 펼쳐보고 쌓아놓고 하면서 더불어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그 후 철이 들고 글을 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때, 책방은 내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서가에 빽빽히 꽂혀 있는 책들을 둘러볼 때면, 나는 춘추전국 시대에 온갖 세력이 난립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리하여 공연히 유치한 비장감을 느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멋진 싸움판이다. 한 번 뛰어들 만 하구나.”
그러나 요즘은 서점에 들어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섬찟해지곤 한다. 온갖 종류의 책들이 각기 취하고 있는 선정적인 자태, 그리고 저들끼리 벌이는 암투, 그런 저런 것들이 예사롭지 않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때로는 잡초처럼 베어지는 군사들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 땅바닥에 쓰러진 그들의 몸을 짓밟고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 두려움을 잊기 위해 공허하게 질러대는 고함과 아우성이 한데 뒤섞여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기까지 한다.
그런 속에서는 내가 어떤 말을 중얼거리든 그 말이 내게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사코 소리내어 중얼거린다. “책방은 시장이 아니다. 책방은 서재여야 하고, 도서관이어야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찾아든다. 그렇다면 정작 나는 어떠했는가. 나도 또한 책방을 시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이 아닐까.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책방을 시장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인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나는 책방을 나선다.

* 한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중인 소설가 최수철은 <<공중 누각>>으로부터 <<분신들>>에 이르는 4권의 소설집과, <<고래 뱃속에서>>에서 <<매미>>까지 8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200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