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부에노스아이레스 행 열차 | 김경욱|

살다보면 그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버릇 같은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잠을 잘 때 오른 쪽으로 눕거나 도어즈의 노래를 들을 때는 눈을 감는 것처럼. 나이테처럼 늘어가는 그 버릇들 중의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기차를 탈 때면 입석을 끊곤 한다. 좌석보다 입석이 싸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입석을 끊고서 식당 칸으로 가는 것이다. 식당 칸에 앉아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마련이다. 사소한 버릇들의 경우 언제부터 그 버릇이 생기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식당 칸을 애용하는 버릇은 그 기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 가을은 유난히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가 본 것은 그녀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작년 가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천안의 한 캠퍼스로 강의를 하러 갔다. 천안에 다니면서 나는 늘 기차를 이용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를 탄 것은 순전히 변비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먼 길을 나서 낯선 경치를 보게 되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화장실이 있는 기차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단풍 시즌이라 단풍놀이를 다녀오는 관광객이 객실의 절반을 차지 할 정도였다. 울긋불긋한 윈드브레이커를 걸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띠었다. 관광객이 많은 탓으로 평소보다 객실은 소란스러운 편이었다. 옆자리의 사내는 뉴욕 양키즈의 모자로 이마를 가린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역시 등산복 차림이었다. 어지간히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팔월의 토마토처럼 익어 있었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역에서 산 석간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마루야마 겐지의 창작집이었다. 나는 책을 펼치고 <여름의 흐름>을 읽었다.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다보면 영등포역이다. 천안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란 그 정도이다. 대전이라면 단편 소설 두 편이나 중편 소설 한 편쯤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옆자리 사내의 코고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코고는 소리가 다시 커질 무렵 기차는 수원역을 지나치고 있었다. 수원역을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기차는 1호선 국철의 선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 선로와 10여 미터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한 채 기차는 서울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텅 빈 그 검은 선로는 마치 생(生)의 이면(裏面)처럼 더 가까워지지도 않고 더 멀어지지도 않은 채 평행선을 그리며 기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그 텅 빈 선로를 바라보며 나는 자신도 모르게 차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달리는 그 검은 선로는 내 눈썹과 코 사이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사위는 어둠에 잠겨 있었고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 불빛에 따라 선로는 점멸( 滅)을 반복하는 무슨 신호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나곤 했다.
그때였다. 그 텅 빈 선로 위로 순간 환한 빛의 흐름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청량리 방면 1호선 지하철 열차였다. 열차는 환하게 불을 밝힌 채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열차의 불빛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고 따뜻해 보였다. 승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좌석에 앉아 있었고 몇몇 사람들만이 서 있는 정도였다. 그 중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그녀. 나는 처음으로 그녀와 손을 잡았다. 누군가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요구할 때면 어렴풋이 떠오르던 얼굴이었다. 해외 지사에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떠난 것이 벌써 12년 전의 일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몇 통 받은 게 지난 세월 동안 그녀와 맺은 인연의 전부였다. 포루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배우는 데 무척 애를 먹고 있다는 게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었다.
12년이 지났으니 포루투갈어와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있어야할 그녀가 10여 미터 너머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내가 탄 기차 그녀가 탄 열차는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세월이 얼마간 흘렀지만 나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가 시선을 나에게 던져주기만 바랄 뿐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차가운 유리창 표면에 하얗게 입김이 서릴 뿐이었다. 두 개의 열차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표정의 변화마저도 읽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 채 무심히 달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기차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탄 기차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탄 열차가 조금씩 앞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통로로 빠져 나와 앞쪽으로 다급히 걸었다. 그녀의 얼굴이 불빛의 흐름 속에 묻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통로를 내달렸다. 앞 칸을 지나쳐 그 앞 칸으로,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아-. 나는 외마디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그녀와 내 열차 사이로 대전으로 향하는 경부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탄 기차가 속도를 늦춘 이유를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기차가 완전히 자나갔을 때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나는 식당 칸에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식당 칸 앞에는 기관차였다.
나는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동안 창 밖만 바라보다 맥주를 주문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어둠 속의 묻힌 텅 빈 선로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등포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선로 위로는 어떤 열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 날 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동창을 만나게 해주는 사이트를 클릭했다. 막연한 심정이었지만 기대하는 바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니터 앞에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폐교되었다는 것이었다. 폐교된 학교의 동창생을 위한 모임 방은 없었다. 학교는 사라져도 동창생은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등학교 사이트에 접속했다. 고등학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다음날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그는 외교통상부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술이 몇 잔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나는 그녀의 소식을 물었다. 외교통상부라면 어쩌면 그녀의 소식을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표정은 그러나 어두웠다. 그녀는 재작년에 지구 반대편의 어느 거리에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한 사고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내일도 나는 천안에 내려간다. 어김없이 기차를 탈 것이고 입석을 끊어 식당 칸에 앉아 있을 것이다. 식당 칸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쓸쓸해진다.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볼 것이다. 마치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려는 것처럼. 그러면 텅 빈 선로 위로 따뜻한 빛의 흐름이 나란히 달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구 저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거슬러 달려가는 빛의 흐름을.

* 소설가 김경욱은 장편 <<아크로폴리스>> <<모리슨 호텔>>,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를 펴냈다.
(20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