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자를 위하여 |장석주|

마흔 너머는 텅 빈 동물원 같은 것
한때 이 동물원은 온갖 진기한 동물들로 북적거렸네
저 먼 아프리카가 고향인 늙은 獅子가 죽어버린 뒤
동물원은 낡은 궤짝처럼 문이 닫혀버렸네

우리의 婚禮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나는 가끔씩 닫힌 동물원 앞을 지날 뿐이네
세월이 깊으면
정원의 나무들에서부터 조락은 시작되네

일몰의 시각에는 왜 밀물 같은 슬픔이 몰려 오는가
그런 때는 저 서랍에서 오래된 노래책을 꺼내
나지막이 노래라도 부르자

오 나는 너무 늦었는가
언덕 위 교회 창문들은 밤새 심하게 덜컹거렸네
허리 구부정한 사육사가 죽은 아침에도
비가 뿌렸네
나는 한번도 사자처럼 살지 못했네
노란 잎들이 유가족처럼 땅에서 젖은 채 뒹굴었네
사람들은 빗속에서 죽은 사육사를 매장지로 운구해 갔네

* 평론 활동을 겸하고 있는 시인 장석주는 <<햇빛 사냥>>에서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에 이르는 9권의 시집과,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 외 여러 권의 평론집을 펴냈으며, 최근엔 한국문학사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200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