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삶과 문학의 일치와 모순 |오생근|

삶과 문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글은 사람이 산만큼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 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시인은 자신의 삶을 얼마나 깊이 있게 살고, 꿈을 꾸었는가에 따라 좋은 시를 쓸 수 있고, 소설가는 자신의 시대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또 그것을 어떻게 문학적 의식으로 전화시켰는가에 따라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문학의 원천이 삶이라거나 문학이 삶을 반영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인격적으로 훌륭한 작가가 뛰어난 소설이나 시를 쓴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사회운동에 앞장서거나 체험이 풍부한 사람만이 시대정신에 투철하고 풍요로운 문학을 남긴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학적 자원의 원천이 무엇보다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정신이나 태도에 기인한다고 보지만, 작가의 삶과 문학과의 관계는 일치되기 보다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앙드레 지드가 ‘훌륭한 생각이 나쁜 문학을 만든다’고 했던 것도 이런 경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가는 자기가 산만큼의 글을 쓰게 된다고 믿는 까닭은 무엇일까?
얼마전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내한했던 알바니아 출신의 프랑스 망명작가인 이스마일 카다레는, ‘분쟁 속의 작가’라는 큰 주제 아래 준비한 ‘문학과 삶의 관계’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삶은 문학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문학의 적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삶이 문학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삶이 문학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대중의 저속한 취미와 삶을 지배하는 시장의 논리가 문학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와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고 문학의 대중화가 초래되는 현상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는 모든 인민이 문학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공산주의 정권의 주장도 문학을 파괴하는 수단임을 예로 들었다. 또한 그는 문학의 논리와 삶의 논리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삶의 중요한 사건들이나 프랑스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이 문학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취급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분쟁 속의 작가’라는 주제로 참가한 한국 작가들이 과도할 정도로 남북 분단의 비극적 현실의 무게를 중요하게 언급한 내용과는 상치되는 논리였다. 작가로서 알바니아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말하기로 한다면, 우리의 비극적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을 열거했을 터인데, 그와 같은 민족적 수난과 고통의 역사가 문학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삶과 문학이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로 과학의 발전과 문학이 상관없는 것임을 진단하고, 인터넷의 발견 역시 문학의 장래를 위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인터넷은 결코 위대한 문학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문학을 옹호하고, 고급한 문학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면서 삶과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사실주의적 소설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삶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그의 글은, 문학의 의미는 분명한데 삶의 개념이 무엇인지 일정한 범주로 묶어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개념을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문학의 편에서 이야기한 것이 문제로 보였다. 삶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는 법이다. 카다레가 삶과 문학을 대립적인 것으로 논의했을 때, 아마도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삶은 부정적인 요소의 삶,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현실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우리가 거부해야 할 삶, 진부한 일상의 반복되는 삶, 그러므로 변화시켜야 할 삶을 의미할 경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찾고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의 삶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훌륭한 작가란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는 사람, 다시 말해서 허위의 삶을 진정한 삶으로 바꾸려는 열정과 의식이 뚜렷한 사람이며 그것이 문학의 형식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삶과 문학의 관계는 밀접하다고 보는 것이며, 작가는 자신이 산 만큼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논리를 지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갖건, 중요한 것은 삶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긴장된 의식이 상투화된 문학의 틀을 깨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문학의 창조로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이다.

* 서울대 인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비평가 오생근은 <<삶을 위한 비평>> <<현실의 논리와 비평>>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 등과 같은 평론집 외에도, 프랑스 문학과 관련된 여러 편서를 펴냈다.
(200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