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바다로 추락하는 자전거 |이광호|

아직 쓰여지지 않은 글들은 나를 들뜨게 하지만, 이미 쓰여진 글들은, 함부로 쏟아낸 말들처럼, 언제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몇 해 전 나는 여행 소설들을 리뷰하면서 바다의 기억에 관한 몇 가지 이미지들을 호명했다.

바다를 기억한다. 반도의 남쪽 해안에 자리한 한 도시, 그곳에서 보낸 스산한 세월들을. 주말이면 까만 제복을 입고 외출 나온 군인들로 붐비던 그 도시의 사거리와 그 도시가 껴안고 있던 불투명한 내해(內海)를. 벚꽃 잎이 날리던 날의 뒤척거리던 물비늘. 백파(白波)로 으르렁거리던 우기(雨期)의 해안. 잿빛의 군함을 처음 탔을 때의 견딜 수 없던 구토. 한 점 낭만과 마음의 사치도 끼여들 수 없는 항해와 그 시절의 어느 새벽에 보았던 사막과도 같은 바다를……

다소 장식적이고 감상적인 이 문장들 뒤에 나는 “그 바다 때문에, 그 바다가 호명하는 누추한 기억 때문에, 이런 소설들을 읽은 것은 아니다”라는 토를 달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바다들의 선명한 이미지는 내 기억력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들을 이룬다.
내 개인적 상징 공간 안에서 바다는 무엇보다 위험의 표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가족들을 데리고 갔고, 덕분에 나는 그 고전적인 해수욕장들을 두루 경험해 보았다. 어느 해 서해안의 어떤 해수욕장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뭔가 발목을 잡아끄는 듯한 이상한 물살의 힘을 느꼈고 곧 이어 예리한 칼날 같은 것들이 발바닥을 스치는 느낌을 받았다.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모래사장으로 나온 나는, 내 발바닥에 마치 칼로 그은 듯한 무수한 선들이 있고 그 날카로운 선들 사이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나는 그때 내 발바닥에 닿았던 그 칼들의 정체를 모른다. 만조의 물이 들어오기 전 해안에 쌓여 있던 병 조각 더미인지, 아니면 바위에 붙어 있는 조개 껍데기들인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알지 못함의 공포가 바다의 위험을 더 깊고 캄캄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행처럼 나는 그 후에도 바다의 위험에 여러 번 노출되었다. 중학교 때는 서해안의 섬에 놀러 갔다가 알코올 버너가 폭발하여 다리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지독하게 뜨거운 여름이었다. 모래 언덕 너머에 있는 그 섬의 유일한 병원,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나는 소달구지에 실려 선착장으로 옮겨졌는데, 내 머리 위에는 한 여름의 악마적인 뙤약볕이 일렁거렸다.
앞에 인용했던 글 속의 군대 시절, 바다는 그 위험한 상징성을 다시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 해안 도시의 어느 날, 나는 당직을 서고 있었고, 라면과 약간의 소주를 마셨다. 순찰이라는 명목 아래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를 돌았다. 군화를 신고 허리에는 권총까지 차고 있었지만, 그 답답한 무게에 그 즈음 익숙해져 있었다. 그곳은 연병장이 바다와 맞닿아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식민지 시대 일본군들이 바다에 내리는 비행기를 끌어올리던 곳이라 바다와 연병장은 어떤 턱이나 난간도 없이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또렷하게 눈을 뜬 별들 아래 밤바다의 어둠 때문에, 파도의 음향과 냄새는 더욱 선명했다. 그 순간 갑자기 무엇에 이끌렸고 발작처럼 자전거를 바다 쪽을 돌려 내달렸다. 바퀴가 물 속에 약간 잠기자마자 물이끼들 때문에 자전거는 여지없이 미끄러졌고 내 몸은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는데, 바닥에는 예리한 조개 껍데기들이 누워 있었다. 그 예리한 칼날들에 내 손바닥의 피부는 거칠게 찢겨져 나갔다. 손바닥 위로 비릿한 액체가 흘렀으나 나는 그 자리에서 금방 일어나지 못했다. 피투성이의 손바닥을 어쩌지 못하고 주저앉아 출렁거리는 어둠 저 쪽을 한동안 응시했다. 그러니까 나를 받아주지 않는 바다 쪽을……
아마 이 사소한 기억들 위에 어떤 개념적 의미를 개입시키는 것은 구차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억은 결국 지금 상상된 기억이다. 내 개인적인 상징 체계 안에서, 바다는 마치 여자처럼, 혹은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처럼, 위태로운 것이었다. 나는 바다에 관한 내 불온한 감상주의를 혐오했으나, 바다의 불길한 매혹은 그 후의 시간들에도 지속되었다. 바다를 생각하면, 손바닥과 발바닥이 쓰라리다. 그리고 그 살갗 위의 주름들이 그 때의 흉터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 바다 속의 예리한 조각들이 그어놓은 손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오바’ 한다.

*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인 비평가 이광호는 평론집 <<위반의 시학>> <<소설은 탈주를 꿈꾼다>> <<환멸의 신화>>를 펴냈다.
(200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