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지우개가 달린 연필 |권오룡|

지우개가 달린 연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도 한 쪽 끝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만들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 하나 흔한 것이 없어 지우개를 따로 장만하기조차 만만치 않았던 우리네 어린 시절,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는 참으로 쓸모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은 고무의 질도 그렇게 부드럽지는 못해 잘 지워지지도 않았고, 자칫 잘못하면 종이가 찢어지기 일쑤인 그런 조악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잘못 쓴 글이나 틀리게 표시했던 답을 우리는 그것으로 지우곤 했었다.
그러고 보면 쓰라고 만든 연필 끝에다 지우라는 지우개를 붙여 놓을 줄 알았던 착상도 꽤 기발한 데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 쓴 것을 지우라는 용도로 붙여 놓은 것이었겠지만, 그냥 내 멋대로 해보는 생각에서는, 글쓰기란 지울 수 있어야 한다는, 혹은 지울 줄 알아야 한다는, 아니 글이란 스스로 지워져야 한다는 오묘한 뜻을 그것은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왕 멋대로 하는 생각이니 하나 더 덧붙이면, 글이 무거우냐 가벼우냐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품위에 대한 판단에 이르기까지 글의 됨됨이에 대한 모든 판단도 글의 주제나 문체나, 뭐 이런 것들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한 그것이 지워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지워지는 글이라니? 좀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이런 어색한 생각을 처음 품어 보았던 것은 이청준 선생의 <비화밀교>나 <자유의 문> 같은 소설을 읽었을 때였다. 이 두 편의 소설은 똑같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의무와, 말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이의 갈등을 기본 모티프로 삼은 것이었다. 이 갈등을 앞에 두고 이청준 선생은 작중의 화자나 인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다 말하게 함으로써 의무를 수행하고는, 그 덕분에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게 된 작가는 금기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내게는 보였다. 그것이 내게는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것을 말하는 방식이라 생각되었다. 가히 절묘하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이러한 글쓰기의 방식이야말로 지우개 달린 연필로밖에 쓸 수 없는 그런 글쓰기가 아닐는지… 급기야 <<축제>>에 이르러서는 한 노인의 길고 간난했던 생의 무게 전부가 나비의 날갯짓으로 가볍게 지워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느낌의 감동을 나는 <<이청준 깊이 읽기>>에서 서투르게나마 “삶의 참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의 몸은 늙어 오그라들고,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버릴 뿐이지만, 기실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가볍디가벼운 영혼의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리라. 삶이 이러한 것이라면 그 삶의 언어적 형상물인 소설 또한 이러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 육중한 서사의 몸을 갖되 오히려 서사를 통해 끊임없이 그 몸의 무게를 덜어내어 끝내 그 몸이 다한 곳에서 가능성으로 가볍게 기화하는 정일한 정신”이라고 글로 옮겨 보았다. 소설에 대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생각은 다른 글에도 두루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게으른 글읽기의 과정에서나마 이런 글들을 만나 보는 일은 즐겁다. 아니, 두렵다. 사실은 이 홈페이지 주인의 산문집인 <<식물성의 저항>>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지만, 다른 자리에서라면 몰라도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나도 좀 거북하고 주인도 쑥스러워할 것 같다. 그러나 이것 말고라도 최근에 읽은 이성복의 <왜 시가 아닌가>라는 글에서도 즐거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런 묘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부터 지워나가기 시작한 그 글은 마침내는 그 자신의 시의 불꽃으로도 명멸하지 않은 그 어떤 것마저도 지워버리려 하는 것처럼 내게는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읽기가 두려운 것은 나도 이렇게 지우개 달린 글, 스스로 지워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욕망이야말로 글이 지워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일 터… 그러니 혹시 내 연필에는 지우개는 없고 심만 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아니, 지우개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그게 심이었던 것은 아닌가? 아마 그런 모양이다.

* 한국교원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중인 비평가 권오룡은 평론집 <<존재의 변명>> <<애매성의 옹호>> 등을 펴냈다.
(2000.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