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식인종 만나기 |박덕규|

오랜만의 야근 없는 퇴근이 방심을 부른 것일까? 내일 새벽 곧바로 공항으로 가서 출장 길에 오를 일정이라 일찌감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했는데, 그러고도 빠뜨린 서류가 있었다. 결국 식인종을 만날 운명이라는 얘기였다. 사흘 전 전화로, 나를 찾아오겠다는 청에 마지못해 응하고 난 이후부터 오늘까지 그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두 퇴근하고 난 텅 빈 사무실에 혼자 환하게 불을 밝혀 놓고 서류철을 뒤적이면서 버릇처럼 컴퓨터를 열어 이런저런 자료를 함께 보다가 뜻밖의 파일을 발견한 것이다. 파일 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글로 생각하고 영어 자판을 두들기는 내 버릇으로 미루어 보면 분명 ‘식인…’으로 시작되는 말이었다. 정작 내용은 몇 문장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이 식인종을 만나기로 한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비문 몇 개가 연이어져 있었다. 그래도 희한하게도 그 파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인종이 건 전화가 그때서야 왔다.
“차가 막 밀리는데요… 퇴근 안하셨죠?”
나는 책상 아래 서랍의 자물쇠를 풀어 위스키 한 글라스를 받아 냈다.
작년 여름부터인가, 나는 이 식인종한테 몇 차례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은 오년 전쯤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내가 담당한 ‘신입 사원을 위한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자신의 연애 문제로 나와 개인 상담을 했는데, 그 후 여자와 헤어진 충격으로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 두기는 했지만, 내가 그때처럼 자신에게 친절하게 상담을 해 줄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고 했다.
“제가요, 전생에요, 사람을 막, 잡아먹은 기억이 생생하게 나거든요…”
이런 말투였다.
“제가요, 솔직히요, 사람 잡아먹는 얘기를, 막 하니까요, 여자들이 싫어해요. 그래서 결혼도 못하고요, 저도 미치겠어요. 월남 전쟁 아시죠? 제가 전생에 2차대전하고 청일전쟁하고 두 번 전쟁에 나갔거든요. 어느날 적군한테 기습을 당해 갖구요, 아군 전체가 몰살될 뻔했거든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제가 보초를 서다가 갑자기 동료를 막 뜯어 먹고 있는 겁니다요… 제가 고기를 입에 대지도 못하거든요.”
처음에는 이 사람한테 일말의 동정심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다 회사에서 이 사람 얘기를 털어놓자 직원들이 “에이, 그 사람 돌았네요, 뭐.” “어쩌면 진짜 식인종인지도 모르죠. 조심하세요, 과장님, 큭큭큭…” 식의 반응을 보여서 그 뒤로는 식인종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내가 이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치부하고 아예 ‘식인종’ 식으로 명명하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결국 이 사람에게 있었다. 이 사람은 처음에 나를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 들어주고 위로해줄 카운셀러로 정도로 여긴 듯했는데, 점점 더 수긍할 수 없는 얘기를 했다. 무엇보다 자기 얘기를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게 해 달라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회사 홍보실에서 텔레비전용 광고를 준비하던 때의 일을 오년 전의 특강에서 들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텔레비전에 내보내려면 원고가 있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다음 전화에서부터는 다짜고짜 자기 글을 읽었느냐는 질문이 먼저였다. 그 진지한 어투로 봐서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글로 써서 실제로 내게 부쳤을 가능성이 컸는데, 그러나 나는 그런 우편물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원고를 읽었느냐, 받지 않았다, 보냈는데 이상하다 다시 보내겠다, 그럴 필요 없다… 이런 식의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런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거 나까지 뜯어먹으려고 이러나 당신, 응?”
내 쪽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은 그 어떤 날 왠지 모를 미안한 감정으로 그간의 일을 컴퓨터에다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비문으로나마 몇 개 적어둔 것이었다. 그 파일이 오늘, 이 사람을 만나게 된 날에야 열어보게 되었으니 정말 이걸 운명이라고 할밖에.
사흘 전의 전화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역시 그 원고 얘기였다.
“원고에 빠뜨린 내용이 많거든요. 새로 생각나는 생생한 얘기가 많아서요. 제가, 전쟁에 많이 참전했거든요… 청일전쟁 때 왜놈들이 조총으로 나를 막 쏘더라구요. 근데 내가 안 죽잖아요. 내가요, 이건 만나 뵙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어린 빨갱이 인민군 아이를 막 뜯어먹고 있는데요… 지금 시간 있어요, 아 참, 지금은 바쁘고 내일 오후 어때요? 내가요, 막, 생생한 전생 얘기가 많거든요.”
그래도 출장 기간 동안에 이 사람을 오라고 하지 않은 것은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양심이랄 수 있었다. 사실, 이 사람이 입사하던 무렵에 비하면, 나는 지금 인간도 아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사사로운 연애 얘기를 들어주면서 인생의 다양한 진로에 대해 시시콜콜 웃으며 설명해 줄 카운셀러가 존재할 수 있는 회사는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번 출장이 터무니없는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결과가 내가 제시한 목표의 반을 얻는 정도에 그친다 해도 대성공인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성공할 가능성 역시 3할대에 이르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상황에 이르더라도 나는 명퇴 대상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내가 직원들의 책상을 뒤져 남아 있는 술로 몇 잔을 더 만들고 마시고 있는 사이 식인종이 현관 앞에 당도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친절하게 엘리베이터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어떻든 나는 완전한 본의는 아니었지만 식인종에게 최대한의 예의는 갖춘 셈이었다. 공식 퇴근 시간까지도 남아 있었었고, 그리고 지금은, 뒤늦게 다시 회사로 돌아와 혼자 빈 사무실을 지키며 식인종 때문에 남긴 글을 열어서 읽으며 기다리고 있다. 나 나름대로는 이 식인종의 병을, 지나친 피해 의식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한 현대인에게 나타난 과대망상의 일종이라고 진단할 도리밖에는 달리 없었다. 식인종에게 절대로 서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매일매일 일기처럼 또박또박 적어서 유명 방송국 제작국장에게 보내라고 권유할 작정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체험을 즐겨 다루는 몇몇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대로 말해 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쪽 얘기를 찬찬히 듣고 있을 식인종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손쉬웠다. 이 사람은 다시 자신이 청일전쟁이며 육이오 전쟁이며 월남전쟁에 참전해서 인육을 먹고 있던 모습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 얘기가 그 사람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그리 생생하게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충분히 새겨들을 수 있다. 식인종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허여멀건 낯색을 보이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했다.
내가 이번 출장에서 돌아오면, 식인종이 내게 전화를 거는 일 따위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머지 않아 이곳에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 협성대 문창과 교수로서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박덕규는 시집 <<아름다운 사냥>>,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등 4권, 평론집 <<문학과 탐색의 정신> 등 3권을 펴냈으며, 소설교육 커뮤니티 ‘큐픽션(www.freechal.com/qfiction)’을 운영하고 있다.
(20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