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사랑, 그 어리석음의 천적 |이성복|

일전에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한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어느 시 외곽 지역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제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 아이는 소위 미혼모의 아들로서 외갓집에 살고 있는데, 명절 때면 외지에 나가 있던 엄마가 찾아와 각종 오락기니 컴퓨터니 장난감이니 다 사주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 큰놈이 학교에 와서는 선생님한테 자꾸 기대려 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등이라도 다독여 주면 금새 와서 폭 안긴다는 것이었다.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나이에 사랑 받지 못하면 사랑은 영원한 갈증으로 남게 될 것이고, 다 자란 뒤에도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외할아버지 되는 사람은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저놈의 자식 때문에 제 어미 신세 망쳤다고 야단이나 치고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저도 모르는 죄에 주눅이 들어 식구들 눈치나 살피며 골방에서 제 혼자 슬픔을 삭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 엄마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못 하는 것이 어디 그 아이의 잘못이겠는가. 언제 한번이라도 그 아이가 제 엄마에게 불륜의 사랑을 사주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아이야말로 제 어미의 한 순간 불장난의 희생물이 아니었던가.
사실, 그 아이가 제 어미의 죄의 결과인데도 그 원인으로 지탄받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와 판단에도 그와 같은 논리의 착오가 얼마나 많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주위 사물이나 사람들을 기피하고 혐오하는 데는 그와 같은 인식의 오류가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북돋우어 주어야 할 것들을 우리는 미워하고 배척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죄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모든 어리석음은 인식의 착오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늘 제 속을 까뒤집어 어리석음이 숨어 있을 구석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어리석음이 無始無終이라면, 그 天敵인 사랑 또한 無始無終이 아니겠는가.

* 계명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중인 이성복 시인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과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먼 길>>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을 펴냈다.
(20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