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무협소설 이야기 |성민엽|

북경대학 중문과 대학원에 김용 연구가 정식 강좌로 개설되었다. 김용은 홍콩에서 활동한 무협소설 작가로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다. <<영웅문>>을 필두로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녹정기>> 등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고, 그것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와 티브이 드라마가 비디오 대여점에 좍 깔려 있다. 예를 들면 한때 화제가 되었던 영화 <동방불패>는 <<소오강호>>에서 나온 것이고, 영화 <동사서독>은 <<영웅문>>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의 무협소설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나라 중엽에 나온 <<아녀영웅전>>과 <<삼협오의>>를 그 처음으로 보는데, 이것들은 의협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 그리고 이 의협소설은 다시 명나라 때의 소설 <<수호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 중 의협류라 불리우는 단편소설들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심지어는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 중의 <열전>으로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이 의협 주제의 연원이라면, 다른 한 연원은 도교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금단도교와 신선사상이야말로 무협소설의 상상세계를 구축하는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무협소설은 20세기에 들어와 생겨났다. 청나라 말에 나온 신소설이 20세기초 현대문학의 등장과 함께 구소설이 되고, 그 구소설이 나름대로 근대적 성격을 띠며 통속소설이라는 장르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무협소설이 탄생했다. 그러니 무협소설은 나름대로 근대적 장르인 것이다. 20세기의 무협소설은 다시 구파와 신파로 나뉜다. 20세기 후반의 무협소설은 다 신파이며 김용은 신파 무협소설의 대표적 작가이다.
말이 길어졌다. 요는 김용이 북경대 중문과 대학원의 정식 강좌 주제로 채택되었다는 얘긴데, 이는 좁게는 무협소설, 넓게는 통속소설에 대한 재평가라는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무협소설을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인정하고 그 의미를 고찰한다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다. 사실 20세기의 무협소설은 현대 중국인의 기층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문학 현상으로서 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기에 문학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며 이를 정당하게 밝히는 일은 필요한 일이지만, ‘문학'(고급문학이나 본격문학이라는 말은 그 어감상 문제가 있으므로 그냥 ‘문학’이라고 하자. 차리리 ‘고통의 문학’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기 위해 무협소설과 통속소설의 의의를 과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가령, 1993년에 나와 일천만 부가 넘게 팔린 가평요의 장편소설 <<폐도>>의 운명과 비교해보면 그 점 분명해진다. <<폐도>>는 고통의 언어, 절망의 언어가 외설의 언어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바, 중국 당국에 의해 상업적 외설물로 규정되어 금서가 되었다. 당국만이 아니라 문학계에서도 <<폐도>>에 대해서는 도덕적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고 그 상황은 아직껏 바뀌지 않고 있다. 김용과 가평요의 대조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를 암시해준다. 둘 다 많이 팔렸지만, 가평요가 지배 이데올로기와 갈등 관계에 있다면 김용은 화해 관계에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남을 통해 내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김용 얘기를 하는 것은 이것도 그런 경우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서울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비평가 성민엽은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 등의 평론집과 <<민중문학>> 등의 편서, 그리고 <<루쉰>> 등의 중국문학 관계 편서·역서들을 펴냈다.
(200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