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제발 그만 해요 |이평재|

하늘색 속옷을 입은 여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 시 반이었다. 내가 속옷을 입고 다니지 않는 헤픈 여자라니! 그들이 왜 그런 엉뚱한 소문을 낸 것일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과 같은 신인에겐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름 전 한 모임에서 첫 대면을 한 뒤부터 한동안 치근덕거리며 전화를 걸어오던 두 남자, 그녀는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회의가 느껴져 슬펐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과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선배라는 사실에 숨통이 막혔다. 쓰레기 같은 그들을 단호하게 물리친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눈짓이라도 해야 했단 말인가?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보름 전,
두 남자가 반갑게 악수를 했다. 한 명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황갈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실내 한 쪽에 놓여 있는 소파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 마련되어 있는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자 흘끔거리며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실내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뒤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들은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여자들만 게걸스럽게 쳐다보았다.
한 여자가 들어왔다. 황갈색 양복이 말했다.
“야, 대단한데. 저 가슴 좀 봐.”
“내가 저 여자한테 질식사 당하는 줄 알았다는 거 아냐.”
검은 테 안경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그때 또 한 여자가 들어왔다. 황갈색 양복이 빠르게 중얼거렸다.
“늙은 여우도 빠지지 않고 나타나셨군.”
“저 여잔 조심해야 돼. 잘못 건드렸다가 봉변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구.”
검은 테 안경이 치를 떨며 말한 뒤 술잔을 비웠다.
이번엔 남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그 남자들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한 여자가 들어왔다. 하얀 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신선한 먹이감을 발견한 승냥이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검은 테 안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못 보던 여잔데…… 누구지?”
“글쎄. 신인이겠지?”
“저 여잔 분명히 검은 색 야한 속옷을 입었을 거야. 내가 겪어보니까, 저렇게 순수해 보이는 여자가 실제론 야하더라고.”
“웃기지 마. 똑같이 하얀 색 속옷을 입었을 수도 있어. 아니, 내 경험으로는 분명 하얀 색이 틀림없다고. 내기할까?”
황갈색 양복이 나지막한 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그들 앞을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와 황갈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동서문학>>으로 등단해 활발한 작품 발표를 해온 소설가 이평재는 첫 소설집을 준비중에 있다.
(200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