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바람만이 아는 대답 |류가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가 이상해서, 뭔 일이야, 라고 물었더니, 애인과 싸운 모양이었다. 내 친구의 애인은 그녀보다 네 살이 어리다. 그는 그림을 전공했고 미술사학을 공부하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재치 있고 끈적이지 않고 상당히 달콤하기까지 한 그는 전형적인 영원한 젊은이(puer eternus). 자기 애인에 대한 내 친구의 고민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그 애는 언제 어른이 될까?”
문제 제기가 끝나자 그녀는 결코 크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성토에 들어갔다.
“난 피터팬이 싫어. 난 결코 크지 않겠다고 작정한 애들이 싫다고… 그 애들은 어른이 되기 싫어, 직장을 갖는 게 싫어, 구차한 일상에 시달리기 싫어, 네버랜드로 도망치지. 그 애들은 현실에 정착하기 보다 고다르 영화나 히데야키의 애니나 하루끼의 소설이나 데리다의 이론 속으로 도망치지… 하지만 걔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네버랜드에서 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걔들의 짐을 대신 짊어져야 해. 누군가는 걔들을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걔들의 경쾌한 유희는 사실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 역시 영원한 젊은이에 관해서라면 맺힌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린 왕자라면 딱 질색이야. 별들 사이를 떠도는 그런 족속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마저 어지러워져. 그들도 인간인지라 외로워서 가끔씩 땅 위로 내려와 사랑을 하지. 그러나 그게 다야. 그들은 사랑을 하고 미련도 없이 떠나버리지. 그들이 떠난 뒤에 황금빛 밀밭의 보며 눈물을 흘려야 할 여우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들에겐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꽃으로 상징되는 절대적인 미나 순수가 더 중요하거든. 그들은 추상적인 이론에는 목숨을 바쳐도 사랑하는 여자의 치통에는 무관심해. 그들은 사랑을 받을 뿐 결코 사랑하지는 못해. 하긴 영원한 젊음이란 흡혈귀의 속성이 아니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친구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욕하는 바로 그 속성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젊은이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갑자기 달콤한 젊은이들이 잔인한 흡혈귀로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미 우리들에게는 네버랜드에서 장난치고 별들 사이를 방랑할 수 있는 심리적 유예기가 끝나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무서운 일이야.” 친구가 말했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르지?”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꿈을 현실과, 가능성을 한계와 맞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씁쓸한 과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아직도 젊어서 죽고 싶어?”
“아니. 시작한 일도 못 끝냈는 데 억울해서 어떻게 죽어?” 내가 말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
“할 수 있을 때 해요, 할 수 있을 때… 재니스 죠플린의 가사 중에 그런 게 있었지.”
“왜 우리가 이렇게 잘 아는 걸 남자들은 모르는 걸까? 그 애들은 왜 철이 안드는 걸까? 안자란다고 두드려 팰 수도 없고?”
“묻지마, 나도 몰라. 그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니까.”
“뭐라고?”
“밥 딜런의 노래 가사야.”
“바보, 지금 넌 내 이야기 듣고 있긴 한 거야?”
그러나 나는 잠시 딴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재니스 조플린과 밥 딜런도 영원한 젊은이였지 하고.

* 소설가 류가미는 얼마 전 첫 장편소설 <<라디오>>를 펴냈다.
(200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