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실종된 책들을 위해서 |최윤|

사람들이 개별적인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고 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때, 그건 책이 반 정도는 이미 땅속에 묻혔다고 간주하는 어두운 징후에 대한 반응이 아닌가한다. 책의 위기라든가, 책의 죽음이라든가, 서둘러 책의 장례로 진입하고 싶어하는 네크로필리아의 문화적 전언에 반대하는 말을 하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된다.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책은 위기이기는커녕, 요즈음에 들어 가히 전성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책이 조금 보이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진가가 드러나기에 책의 구입에 있어서나 독서의 성격(독서의 양은 점점 더 내게는 이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찌 어렸을 때의 난독이나 다독과 현재의 힘 빠진 내가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에 있어서, 나와 책과의 관계는 바야흐로 수십 년 알고 지내던 친구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식의 기이한 밀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혼자 행복하다고 세상이 늘 행복한 세상이 되지는 않듯이, 나도 급기야 책에 대해 추상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요즈음에 들어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한 인터넷 서점의 부탁으로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기 위해 나는 내가 이미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중에는 외국문학도 상당수 차지하는데, 그 책들을 나는 우리말 번역으로 읽었거나, 외국어 중 그나마 어느 정도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인 프랑스어(혹은 프랑스어로 된 번역)로 읽었다.
물론 혼자서 작성한 목록은 야심찼으며 길고도 화려했다. 그러나 목록에 속한 대부분의 책들은 불행히도 빛 좋은 개살구. 아무리 좋은 책이면 뭐하나? 독자들이 손쉽게 사볼 수 있어야지. 이런 순진한 정열로 나는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또 다시 인터텟 서점으로 돌아다니느라 수 시간 서핑하기를 질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한국에서의 책들이 감내해야 하는 우울한 운명을 씁쓰름하게 재확인해야 했다.
존경해 마지않는 과거 및 현재의 작가들이 입을 모아 좋다고 말하는 책들 중 적지 않은 양이 첫째,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번역되었다 하더라도 너무 오래 되어 도서관에나 들려 책에 정 떨어지기 딱 알맞는, 인쇄도 보관도 냄새나 촉감도 양호하지 않은, 고서적 가치를 가지기에는 낡아버린 옛날 판본을 권해야 할 판이니… 그런 추천을 따를 정성어린 독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둘째, 설령 좋은 작품이 번역되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런) 책은 출판되자마자 곧 실종되어버린다. 이건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충 경험하는 일이니까 내게도 새로울 것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해서 찿아 본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겨우 3,4 년 전에 번역된 작품인데도, “절판”이라고 당당히 나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건지 대책이 서질 않는다.
이건 꼭 외국문학 작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작품의 경우 상황은 조금 양호하지만, 크고 작은 문학의 공적 계보에서 일 센티미터만 물러선 작가들의 경우 한 세대만 지나도 그 양상은 더 하면 더 했지 나을 것이 없는 듯하다.
대체 이건 다 누구의 잘못인지. 독자의 잘못인지, 출판사의 잘못인지, 정치나 교육의 잘못인지. 잘못한 자를 찿아야 비판을 하지, 참! 그렇지만 아마도 정치(가) 책임일거야. 우리나라는 문학도 정치(가)중심주의니까. 아, 지루해.

* 서강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소설가 최윤은 중단편집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등과, 장편소설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 <<겨울, 아틀란티스>> 등을 펴냈다.
* 최윤 홈페이지: www.choeyun.pe.kr
(200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