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연애와 풍자 |김혜순|

모든 시는 연애시이다. 모든 시는 풍자시이다. 그리고 또 모든 시는 연애시이면서, 풍자시이다. 연애시는 풍자시를 지향하고, 풍자시는 연애시를 지향한다. 그러나 시가 연애를, 혹은 풍자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가 연애시인 것은 연애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 주체와 타자가 만나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시처럼, 연애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연을 창조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애가 운명에 대한 뼈아픈 발견이며, 그에 따른 고통에 찬 선택이고, 죽음을 부르는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 속으로 파고듦과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상대방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이중의 본능을 수행하려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독하고, 또, 누구보다도 당신과 나 사이에 차이를 없애려는 역설적인 의지를 가진다. 이 이중 자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시의 삶을 수행 중인 시적 자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가 연애를 말하겠다는, 일개인인 시인이 품은 사랑을 시로써 말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시는 연애시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 때 시는 시인의 그 음험한 욕망을 배반해 버린다. 그리고 시의 나락인 자아 도취의 지옥을 일시에 펼쳐 보이면서, 시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모든 시가 풍자시인 것은 시가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는 언어로부터 도망가야 하지만, 그러나 그 도망간 자리에서 언어에게 또 다른 언어를 돌려줘야 하는 운명을 가졌다. 그래서 만약 참여시라는 붙여진 시가 있다면, 다시 언어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 언어의 역설적 행위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야 할 것이다. 시는 본래적으로 내적 해방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고, 다른 세계를 펼치고 싶은 반역의 기운이다. 자신이 처한 세상에 대한 역사적 표현이며, 그 역사를 부정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시와 사랑을 박해하고,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그 체계를 유지해 오지 않았던가. 반현실적이고, 기분 나쁜, 순수하다곤 하지만 어쩐지 파렴치해 보이는, 그러한 시를 내몰겠다는 의지를 가진 세상의 음험한 냄새가 천지사방에서 진동하지 않던가. 이 때 시는 세상을 향하여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칼날들을 가는 빗발처럼 날린다. 아니면 세상에 대해 말로 만든 방패를 높이 치켜든다.
이 때도 시가 세상을 비판하겠다는, 시인의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겠다는 의지를 가진다면 시는 풍자시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 때도 시는 시인을 배반한다. 시는 시인이 밖으로 날린 칼날들을 거두어, 시인을 향하여 그 칼날을 되쏜다. 그러기에 풍자시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덕목이 웃음이다. 이 웃음으로 시인의 의지를 기체화시켜 버리고, 칼날의 끝마저도 부메랑처럼 구부려 시인 자신을 향해 되날리지 않으면, 시는 시인을 배반해 또 하나의 ‘나’라는 지옥을 펼칠 뿐.
모든 시가 연애시이면서 풍자시인 것은 시라는 장르가 시를 쓰는 시적 자아에게 ‘자기 지우기’를 요구하는 잔인한 애인과 같기 때문이다. 연애시를 시도하는 시인에겐 만들면서 부수기를, 풍자시를 쓰는 시인에겐 부수면서 만들기를 요구하는 변덕쟁이이기 때문이다.

* 서울예술대 문창과 교수인 김혜순 시인은 <<또 다른 별에서>>로부터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에 이르는 7권의 시집을 펴냈다.
(200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