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빈둥거리는 책 읽기 |김석희|

근년에 들어 내가 ‘기억 들추기’를 즐기는 것은 스산해진 나이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 별다른 사유의 실마리도 없이 그저 심심풀이 삼아 상념/망상에 잠기다 보면, 저 아득한 밑바닥에서 과거의 한 장면이 마치 인화되는 사진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두어 달 전의 기억보다는 2, 30년 전의 기억이 더욱 새롭다. 그 오랜 세월의 더께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되살아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억의 무늬들, 그리고 가슴에 치미는 아릿하고 저릿한 열기…
하기야 어느덧 반백(半百)의 삶이니, 이제는 인생길도 반고비를 넘어 내리막에 들어선 때가 아닌가. 그러니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스러진 것들 또는 시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들을 건져내고 싶은 심사는 물론 과거의 현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이겠는데, 그러나 그 안타까움 속에는 단순한 회고 취미가 아니라,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과 아직도 적잖은 날들이 남아 있음에 대한 안도감이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심사는 요즘의 독서 버릇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패스트푸드처럼 촌각을 다투며 찍혀 나오는 새책들을 허겁지겁 쫓아다니기보다, 오래 전에 훑어보고 던져두었던 헌책을 다시 꺼내어 한껏 게으르게 뒤적거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아날로그적 반감이 스며 있음도 사실이다. 책의 홍수와 광고의 범람으로 문학마저 산업에 먹히고 있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꼴이니, 포로가 된 책읽기는 허된 욕망의 현시 내지 배출에 지나지 않으며, 거기에 진정한 성찰과 감동이 끼여들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듯, 고향으로 돌아가듯, 헌책으로 돌아가곤 한다. 학창시절 마치 식탐증에라도 걸린 듯 또는 과시욕에 사로잡혀 닥치는 대로 읽어 치우고는, 독후감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도로 꽂아놓았던, 이제는 읽었던 기억조차 아슴푸레한 책을 우연히 발견하여, 뽀얗게 앉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다시 읽어보면, 새삼스럽게 와닿는 감동과 깨달음이 참으로 반갑고 절실한 때가 많다.
예컨대 “인생길 반고비에 길잃고 헤매이다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노라”로 시작되는 <<신곡>>도 예전엔 그저 뜻풀이를 새기는 정도로 읽었는데, 이제는 구구절절 가슴으로 공감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책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더구나 이런 책읽기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 줄거리를 쫓으며 읽을 필요도 없다. 그저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고, 눈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해도 좋다. 발길 가는 대로 산책을 즐기듯이. 목적지가 없으면 어떻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또 어떤가. 숲속의 맑은 공기처럼, 해변의 싱그런 바람처럼, 책갈피마다 행간마다 묻어나는 속살의 내음, 거기에 잠시 취할 수만 있어도 그 얼마나 아련하고 황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랴.
그러니, 책을 가지고 빈둥거릴 수 있다는 것은 나이듦의 축복인가.

* 소설가 김석희는 소설집 <<이상의 날개>>,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 외에, <<로마인 이야기>>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한 번역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