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일인용 의자 |김중혁|

나는 레버를 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레버를 당겼다. 마찬가지다. 빈틈이 없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변기를 내려다보았다. 덩치로 보나 찰기로 보나 도무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청소용 솔을 들고 똥의 중심부를 헤쳤다. 코를 막았다. 똥들은 흩어지면서 냄새를 풍긴다. 그러니 코를 막아야 한다. 똥은 여전히 쫀득쫀득했다. 솔을 들고 있는 내 손이 점점 화를 낸다.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섹스를 하듯 청소용 솔을 구멍 속으로 넣었다 뺐다 한다. 내 손은 점점 거칠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청소용 솔이 똑, 부러지고 말았다. 나는 손잡이를 청부살인 자객용 칼처럼 들고 있다. 나머지는 깊은 곳에 박혀 있다. 나는 손을 넣을까 말까 고민한다. 더럽다, 더럽지 않다, 똥이다, 어떠냐, 독 옮는다, 내가 독이다, 아서라, 냅둬라. 타협점으로 고무장갑을 낀다. 손을 담근다. 구멍은 이미 꽉 차 있다. 내 손이 들어갈 곳은 없다. 휘저을수록 청소용 솔 머리는 점점 깊이 숨는다. 나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좋다. 이 방면의 전문가를 부르자.
장비는 거창했다. 그리고 거대했다. 내시경 관처럼 기다란 쇠파이프 관이 준비됐고 모터가 달린 흡입기계가 설치됐다. 화장실은 전문가와 내가 함께 쭈그려 앉을 만큼 넓진 않았다. 나는 나가 있어야 했다. 전문가는 문을 쾅, 닫았다. 업무상 보여주지 못할 비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참혹한 수술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살을 부비던 사이니까. 나는 문밖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렸다. 천천히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굉음이 들렸다.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뭔가 부서지는 소리, 조각이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마조마했다. 한참 후에 문이 열리고 전문가는 비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안되겠어요. 뜯어봐야 알겠는데요.
전문가들은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도 업무상 비밀과 연결된 문제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아주었다. 곧 두 번째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손톱을 물어 뜯어봐서인지 두 번째 손톱을 물어뜯기는 쉬웠다. 기다리는 것도 이력이 나면 익숙해진다.
곧 소리가 들렸지만 이전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10킬로그램 정도 더 무거운 소리였다. 거대한 소리 때문이었는지 나는 손톱을 더 깊게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세 번째 손가락으로 이빨을 옮겼다. 손가락이 다섯 개란 사실이 고마웠다. 소리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짧고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쿨럭거리는 기침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눈치챈 것 같다. 녀석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다시 문이 열리고 전문가는 똥물을 뒤집어쓴 듯 흠뻑 젖어 있었다. 아니, 그냥 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전문가의 표정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눈치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 가망이 없는데요. 바꾸셔야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쩌자고 저런 걸 쑤셔 박았어요?
전문가들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업무상의 비밀이 없어지고 나면 그냥 보통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전문가의 어깨 너머로 쓰러져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이 청소용 솔을 몸에 꼭 품고 놔주질 않았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또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돈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변기는 꽤 비싸다.
전문가는 전문적인 일을 할 뿐 쓰러진 변기를 거둬 가는 박애정신 따위는 없기 때문에 뒷일은 내가 감당해야 했다. 나는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변기를 내놓았다. 녀석은 쓰레기로 가득한 분리수거장에서 나름대로 빛을 발했다. 빤들빤들한 흰색인 데다 모양까지 특이하지 않은가.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변기를 전시회장에 내놓을 때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약간 섭섭하기도 했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돌아서려는데 아파트 경비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대형폐기물 스티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폐기물이긴 하나 대형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저씨를 설득하려는 마음도 있었으나 변기를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사무소 역시 여러 전문가들이 모인 장소다. 그 중에서 나는 대형폐기물 전문가를 찾았다. 대형폐기물 담당자는 이름과 달리 아주 몸집이 작은 여자였다. 내가 말을 건네자 여자는 말간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 변기요?
– 네, 변깁니다.
여자는 오른쪽에 있던 노트를 펼쳤다. 아마도 ‘대형폐기물 폐기를 위한 가격책정 매뉴얼’쯤 될 것이다. 노트의 첫 장부터 끝장까지를 꼼꼼하게 살피던 여자는 다시 한 번 말간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 변기는 목록에 없는데요?
– 목록에 없으면 안 붙여도 되나요?
– 아뇨, 붙이셔야 할 걸요.
그럼,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대형폐기물 전문가는 대형폐기물 전문가답지 않게 주위에 있는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변기’라는 단어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동사무소 직원들은 대형폐기물 전문가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 가구일까?
– 아니지, 그건.
– 가전제품도 아니고 말야.
– 폐자재는 어때?
– 자재가 아니잖아. 완성품목으로 처리해야 돼.
– 아, 소파로 하면 되지 않을까?
– 저렇게 딱딱한 소파가 어딨어?
– 등받이도 있잖아.
– 그게 얼마나 더러운데 거기다 등을 대?
– 그럼 의자로 하면 되겠다. 의자는 딱딱하기도 하니까.
– 등받이가 없는 의자도 있으니까?
– 등받이가 있지만 등을 기대지 않는 의자.
말씀 도중에 죄송하지만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가끔씩 등을 기대기도 했었어요, 라고 말을 건네자 동사무소 직원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 아, 그럼 됐네, 1인용 의자. 값도 제일 싸지 않아?
– 3천 원.
나는 3천 원을 내고 노란 원 속에 1인용 의자라고 씌어 있는 스티커를 받았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일렬로 서서 내게 잘 가라는 인사를 했고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세계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낸 것이다. 변기=1인용 의자.
나는 1인용 의자라고 쓰여 있는 스티커를 변기에 붙였다. 쓰러져 있던 변기는 똑바로 서 있었다. 아마 아파트 경비원이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나는 변기의 하얀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앉아보았다. 플라스틱이 내 무게 때문에 약간 휘었다. 나는 왼쪽 다리 위로 오른쪽 다리를 얹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롤러블레이드를 신은 아이들이 휙휙, 내 앞을 지나갔고 담배 연기가 약간 흔들렸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던 사람 몇몇이 나를 흘낏거렸다. 아마도 변기의 하얀 빛이 너무나 선명하고 눈부셔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계간 <<문학과사회>> 2000년 겨울호로 등단한 소설가 김중혁은 <펭귄뉴스> <사백 미터 마라톤>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200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