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울한, 꼭 그렇지만도 않은 |강문숙|

갑자기 모든 것이 간단해지고 말았다.
아침이다.
–레마르크

식이요법 이십삼 일 째, 맛소금에 버무린 야채는
거의 실신 상태로 밥상에 끌려 나와 앉아 있다.
막 한술 뜨려다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참았던 울음이 터진다.

수술대 위에서 열한 시간 만에 눈을 뜨고도 울지 않았는데
그까짓 숟가락 놓쳤다고 그렇게 우냐?
먹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고 우기더니
겨우 한 그릇 밥통이었다니, 치사하다.
(가끔은 생각하는 밥통?!)

일흔다섯 해, 진지상을 경전처럼 받으시던
아버지. 숟가락 놓치신 일이 왜 없었으랴만
한 말씀, 내 숟가락 위에 얹으신다.

숟가락은 생의 바다를 저어 가는 놋대인 거라
놓쳤다가도 겸손하게 다시 잡아야 되는 거라

사는 게 가장 진실한 것임을 목메이게 하는 아침
누가 이런 날 있을 줄 알았을까
우울한,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 ‘시·열림’ 동인인 강문숙 시인은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을 펴냈다.
(200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