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악어 |김운하|

월요일 아침, 나는 여느때처럼 지하철에서 출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날 따라 상황은 최악이었다. 지하철은 마치 기름을 짜내는 압착기 같았다. 지하철이 터질 정도로 붐비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실로 불가사의한 요령으로 계속 지하철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몸을 접다시피하여 주둥이만 수면 위로 내놓고 숨쉬는 물고기처럼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역사에 멈출 때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떠밀리고 떠밀린 끝에 숨조차 못 쉴 정도가 되고 있었다. 차라리 지각을 했으면 했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속으로 막연한 욕을 해대던 나는 이 지옥 같은 궤짝 속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집요하게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결국 다음 역에서 튕겨 나오듯 전철에서 내리고 말았다. 구겨진 휴지조각처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플랫포옴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뒷골이 쑤시고 심장은 펄떡거렸다. 계단으로는 쉴 새없이 발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발들은 몇 겹으로 된 길다란 줄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저 멍청하고 몽롱한 시선으로 그런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처럼 한가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벌써 지쳐 피로해졌고 자꾸 하품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그만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회사를 떠올리자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럼에도 소심한 나는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이런, 자칫하면 정말 지각하겠군. 나는 땅이 꺼져라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리려 했다. 그러던 순간 문득, 어두운 지하터널 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을 깜박거린 후에 그 물체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덩치가 커다란 악어였다! 이 대도시에 악어라니? 나는 놀란 눈으로 악어를 쳐다보았다. 성인 남자의 두 배는 더 될 성 싶을 정도로 커다란 몸집을 가진 악어는 땅바닥에 배를 깔고서 작달막한 네 다리로 천천히 기어오고 있었다. 악어의 눈은 번쩍거리고 있었고, 찢어진 입에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생긴 이빨이 비죽비죽 솟아나 있었다. 악어는 천천히, 거북이처럼 게으르고 느린 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면서 플랫포옴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놀랍고 두려워서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섰다.
‘악어야, 악어…’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마치 그 악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무심하기만 한 얼굴들이었다. 그저 길다랗게 열을 지어 서서는 전철이 오는 방향으로만 고개를 쭉 빼고 기웃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악어는 플랫포옴으로 내려오는 계단 바로 앞 쪽에서 지하철 선로 위로 기어 올라왔다. 계단으로는 사람들이 물살처럼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악어는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 무섭고 날카롭게 생긴 악어 이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세상에, 악어라니! 나는 갑자기 나타난 그 놈의 악어 때문에 순간적으로 출근에 대한 생각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나는 겁에 질려 다시 주변을 살폈고, 마침 내 곁을 지나가는 남자가 있어 그를 붙잡았다.”저, 저기 좀 봐요! 악어, 악어가 안 보여요?”
남자는 내 말을 듣고 귀찮다는 듯이 악어 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인지, 미친놈이라도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이 사람이, 바쁜 사람 붙잡고 장난치나…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남자는 내 손을 홱 뿌리치곤 사람들이 열을 지어 서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급한 마음에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저기 악어가 안 보이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던 그 남자는 나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게, 젊은 친구! 자네 정신이 이상한거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원을 그려 보였다. 내가 멍청히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정말 내 눈이 어떻게 된 건가?’
나는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든 후에 다시 악어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악어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눈을 부라리면서. 악어는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양복을 입은 한 젊은 남자를 덥석 물어버렸다. 남자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단숨에 악어의 거대한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를 삼켜버린 악어는 입을 쩍쩍 다셨다. 그런데 사람을 삼킨 그 악어의 몸집은 조금 전보다 더 커지고 있었다. 악어는 다시 계단 아래쪽에 서서 입을 쩍 벌렸다. 이번엔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던 젊은 여자를 한 입에 덥석 물어 삼켰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고개를 돌려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을 한 번씩 잡아먹을 때마다 악어의 덩치는 점점 더 커졌다. 악어는 계단 아래쪽에 서서는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을, 그 거대하고 섬뜩하게 생긴 주둥이로 덥석덥석, 마치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입을 벌리고 받아먹듯이 그렇게 잡아먹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악어의 덩치는 쑥쑥 자라났고, 악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
악어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동안에도 지하철은 질주하며 플랫포옴에 와서 멈추어 섰고, 플랫포옴에 열을 지어 서 있던 사람들은 허겁지겁 지하철에 올라탔다. 인간들이 질주하는 지하철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서두르는 동안 악어만이 느긋하게 자신만의 시간과 세계에 안주하며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저런 식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저 악어가 모조리 다 잡아먹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어의 몸체는 이제 지하철만큼이나 커졌다. 그는 이제 한사람씩 두 사람씩 잡아먹는 것도 지겨운지, 뒤뚱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 거대한 악어는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전철이 지나 다니는 선로 아래로 다시 내려섰다. 악어는 입을 쩍 벌리고 지하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덩치가 어찌나 큰지 선로를 꽉 채워버릴 것만 같았다. 이윽고 지하철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어는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그 거대한 입을 최대한으로 쩍 벌렸다. 그러나 용맹한 무적 전사처럼 달려오던 지하철마저 그 거대한 악어의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 길다란 지하철이 악어의 몸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악어의 몸은 터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덩치가 더 커지고 있었다.
지하철마저 한 입에 삼켜버린 악어는 긴 하품을 하듯 입을 한 번 쩌억 벌리더니, 어둠컴컴한 지하철 터널을 향하여 느릿느릿하고 게으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악어의 동작은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흐르는 시간마저 지쳐 그 곁을 떠나버릴 정도였다. 악어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플랫포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나는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 일이 정말 일어났던 것일까? 헛것을 본 것일까?…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쩍쩍 다셨다. 손목 시계를 쳐다 보았다. 제길, 지각이군.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출근길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길게 열을 지어 서 있는 사람들 뒤로 나아가 줄을 섰고, 복잡한 지하철을 타자마자 그 사건 따위는 곧 잊어버렸다.

* 소설가 김운하는 장편소설 <<사랑과 존재의 피타고라스>> <<언더그라운더>>, 소설집 <<그녀는 문밖에 서 있었다>> 외에, 최근 새 장편 <<137개의 미로 카드>>를 펴냈다.
(200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