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해찰하는, 또는 다중 초점을 가진 시선 |이경호|

어려서부터 나는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방바닥에 엎드린 채로 부근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는 습관이 그것이었다. 특히 아주 가까이 있는 물건을 요모조모 끈질기게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물건의 윤곽이 이중으로 겹쳐 보일 때가 있었다. 이중으로 겹쳐보이는 그 모양이 신기해서 나는 자주 그런 시선을 겨냥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평상시에도 모든 사물의 윤곽이 두 겹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성인이 되어서 안과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의사는 내 눈의 초점 조절능력이 상실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게 통고했다. 그리고 이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느슨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사물의 윤곽이 이중으로 보인다. 눈에 힘을 주고 초점을 맞추려고 해야만 그것이 한가지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다소 장황하게 나의 병력을 늘어놓은 까닭은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현실세계의 모습이 그렇게 이중삼중으로 겹쳐보인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실감나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푸코라는 학자는 그러한 세계의 특징을 “헤테로피아(heteropia)”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 용어는 “서로 병치되거나 중첩되는 이질적 공간”을 뜻하고 있다. 중심이 서로 다른 많은 영역들이 파편처럼 공존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은 아마도 나의 비정상적인 시선처럼 여럿으로 겹쳐진 세계의 흐릿한 윤곽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문제가 있기보다 보이는 세계 쪽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내 경우와는 다르지만 어차피 보이는 효과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할 것인가. 여러 겹의 윤곽 속에서, 여러 개의 파편 속에서 어느 것이 실체인지를 가려내기 어려울 때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를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몽타주나 콜라주 같은 기법이 활개를 치는 근거도 그런 세계의 질서를 반영하는 측면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기법들은 단조롭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은 형태로 세계를 읽어내는 방법이다. 세계를 읽어내는 그 기법들은 문학의 영역에서 시인의 상상력과 언어를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시인의 상상력이자 언어이기도 한 몽타주와 콜라주 같은 기법들은 현대 자본주의라는 세계를 읽어내는 최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기법들이 자본주의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어내게 만들어 주는 댓가로 정신분열증에 걸려있는 현대인의 자아를 입증해주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히 시인과 같은 자들의 상상력과 언어가 그러한 징후를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 연관이 없는 것들을 결합시켜놓은 몽타주와 콜라주의 특징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시간적 계기를 상실해버린, 그리고 타자들과의 유기적인 삶의 관계를 포기해버린 현대적 자아의 정황을 탐지할 수가 있다. 삶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고리를 상실해버린 자아는 방향감을 잃은 채로 현재의 상황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탐닉은 깊이를 포기하는 댓가로 격렬함을 요구하는 법이다. 격렬한 자아의 몸짓은 구심력을 갖지 못하고 원심력의 자장에 갇혀 버리기가 쉽다. 현대사회에서 시인들이 구사하는 상상력과 언어가 이러한 자아의 몸짓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자아의 몸짓이 때로는 격렬한 시적 에너지와 낯설지만 싱싱한 이미지들을 토해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제는 표준말로도 사용되는 전라도 방언 중에 “해찰하다”라는 낱말이 있다. 그 낱말은 한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의 이런저런 하찮은 일에 마음이 분산되는 상태를 뜻한다. 마음의 원심력을 그 낱말이 품을 수 있다면 현대처럼 중심이 분산되어 있는 세계에, 윤곽이 겹쳐보이는 세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마음의 시선은 아마도 그러한 것이 되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시선이 정신분열의 징후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면 이중초점의 증상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더라도.

* 세계사 주간인 평론가 이경호는 평론집 <<문학과 현실의 원근법>>, <<문학의 현기증>> 등의 평론집을 펴냈다.
(200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