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호랑거미 略史 |김명리|

한바탕 비 그치고 나니 거미란 놈들이 분주해진다

소나무와 개암나무 가지 사이의 짙푸른 그늘 속에
집을 짓는 한 마리 호랑거미의 날렵한 젖샘

비 그친 허공의 가파른 잔물결 위로
잠시도 쉴 새 없이 젤라틴의 은빛 못을 박아 넣는다

시간의 올이 성길 대로 성긴 여름 한낮
난티잎개암나무의 벌레 먹은 나뭇잎 한 장 꼼짝하지 않는다

고요의 角皮를 허무는 장마전선 위로
한 마리 젖은 새 허공을 떠받치는 허공의 무게!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 아래로
마침내 발 헛딛고 굴러 떨어지는 거미란 없다

보라, 어느새 기미를 알아차린 저 호랑거미는
물샐 틈 없는 허공의 중심으로부터

날아갈 듯 휘황한 자신의 아방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김명리 시인은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을 펴냈다.
(200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