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느 지옥의 긴 의자 |함성호|

앉아
너와 함께 지하철 플랫폼에서
대화행 3호선 열차를 기다리다
문득 우리 앞에 놓여있는
야곱의 사다리를 보았다
나가는 곳―바미얀 석불이 무너지고 있다
(경복궁 흥례문의 현판이 다시 걸리고)
클러스터 폭탄이 아프카니스탄의 사막에
거미 새끼들처럼 뿌려진다 그래,
모두 무너져라, 모든 복원의 욕망은 불결하니까
기억은 부패를 방해한다
나는 회교 근본주의도 싫고 미국 근본주의도 싫다
재활용 봉지에서 악취를 풍기며 몰락하는
흐린 명태 눈깔들처럼 제발,
썩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아담의 새끼들아
그리고 제국주의의 생일케이크 같은 아시아에도
봄날은 왔다 이 화약 냄새
보스니아에도 꽃은 피고, 토라보라의 산맥에도 꽃은 필 것이다
(맨하튼의 꽃집의 아가씨는 섹시해)
앉아, 난 딸기도 못 먹고
또 몇 번을 더 죽어야 하니?
복원된 것들은 모두 좀비 같애
어느 땐 꽃들도
(어쩔 땐 꽃들의 운명도)

* <<문학·판>> 편집위원인 함성호 시인은 <<너무 아름다운 병>> 등 3권의 시집과 산문집 <<만화당 인생>> 등 2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200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