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무도 셜록 홈즈처럼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다 |정이현|

여러 모로 평범한 대한민국 도시 중산층의 자녀로 자라난 나의 어린 시절 놀랄 만큼 멋지고 매력적인 오빠가 있었으니 그 이름, 셜록 홈즈!
바깥 세상 어딘가에서 내가 몰라야 할 불길한 일들-살인, 강간, 약탈, 방화 따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무렵, 엄마는 홈즈를 사주었다.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삶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두려움은, 그의 등장에 의해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 매력적인 해결사는, 얘야, 이 세상은 결국 설명 가능한 세계란다, 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무사한 ‘홈즈 월드’ 안에서 나는 곰 인형을 껴안지도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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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的 추리 소설의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런던 경찰국의 경감들은 사건의 단서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사건이 미궁에 빠져 오리무중일 때, 셜록 홈즈가 나타난다. 그는 사건 현장의 사소한 흔적을(특히 그 부재의 흔적까지!) 경찰과는 다른 각도로 면밀히 관찰한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유머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다. 범인과 팽팽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결국 범인의 속임수를 밝혀낸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동료들을 위해 그는 상세하게 사건의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탐정소설 속의 기이한 범죄사건은 일상 안에 숨은 어떤 위협적인 돌발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리한 관찰력과 냉철하고 논리적인 사유로 무장한 우리의 탐정이, 이 부조리한 범죄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풍문도, 어떤 전설도 치명적인 위협이 아니다.「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에서 눈과 입에서 불을 뿜는 사냥개에 관한 소문은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힘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우리의 명탐정은 곧 우리를 현혹시키는 거짓 장치를 논리 정연하게 파헤쳐 준다. 명석하고 뛰어난 인간의 ‘이성’으로!
그러므로, 추리소설을 읽으며 ‘스릴’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결말이 뻔한 소설을 읽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 마음을 졸인단 말인가? 통제가능하고 결국 이성의 질서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불길함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지 못한다. 불길한 악몽은 결국 설명 가능한, 뻔한 ‘인간사’로 귀결될 뿐인 것이다.
라깡을 통해 탐정소설을 읽은 슬라보예 지젝이, ‘전지전능한’한 탐정과 정신분석가의 유비적 관계를 말하면서, 탐정을 ‘알고 있다고 추정되는 주체’로 규정한 것은 흥미롭다. 지젝에 의하면 탐정이 사건을 추론하는 과정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꿈속의 사물들을 통해 무의식을 분석해내는 정신분석의 과정에 비견된다. 범인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것처럼 짜 맞춰 놓은 거짓 이미지의 ‘세부’에 주목하여 그 자연스러움을 벗겨내는 것이 탐정의 추론 과정이다.
탐정이 분석하는 범죄 장면은 살인자의 언표작용이 관여하는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의미의 영역이다. 탐정은, 어떤 세부는 사건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부재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은 흔적의 부재를 흔적으로 인식하는 정신분석가의 능력과 같다. 비합법적인 진행의 순서를 합법적인 순서로 변형시키는 것, 악몽을 상징적 현실로 통합시키고 ‘정상 상태’의 재확립을 가져오는 것이 탐정과 정신분석가의 역할이다.
탐정은 세상을 떠다니는 죄의식을 단일한 주체로 국한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혐의를 벗겨 줌으로써 우리를 죄의식의 궁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고 지젝은 분석한다. 탐정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 현실의 차원에서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내적’ 진실을 폐기시켜 준다. 또한 탐정은 그가 밝혀낸 용의자를 우리 모두의 무죄의 보증인으로 만들면서, 우리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우리의 모든 죄를 방면시켜준다.
그런 의미에서, 탐정은 ‘그 속죄양이 실제로 유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범죄 행각을 은폐하려는 범죄자의 기만이 결국 탄로 나게 될 허약한 기만이라면, 우리의 두려움을 벗겨주는 셜록 홈즈의 기만은 강력한 이중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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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간된 셜록 홈즈의 완역본에서 우리의 완벽한 탐정이 코카인을 하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자신이 좋아하는 긴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마약에 취해 있는 그의 모습은 천재적이고 도덕적인 인물로서의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이성적 추론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화신 홈즈가, 평소에는 일상의 권태를 못 견뎌하는 상습적 마약 복용자였다는 사실은 씁쓸한 아이러니를 준다.
어린 딸에게 아동용 셜록 홈즈 시리즈를 사 주었던 내 어머니의 교육적 의도는 무난히 성공했다. 나는 몰염치한 범죄자를 모방하려 하기는커녕 ‘선’과 ‘악’, ‘우리 편’과 ‘남의 편’을 구별할 줄 아는 반듯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불안과 죄의식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줄, 믿음직한 ‘오빠’의 멋진 거짓말을 기다린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흉흉하고, 언제나처럼 나는 무사할 테지만.

* 소설가 정이현은 계간 <<문학과 사회>> 2002년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하였다.
(20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