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책-세상 |심재중|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허적허적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늘었다.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어떤 권태로움 때문이다. 그런 날에는, 한껏 목청을 높여 정신없이 강의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허허로워진다.
<<책그림책>>이라는 책이 있다. 책의 표지 그림과 삽화를 주로 그리는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독일의 화가가 책을 주제로 한 그림 한 점씩을 여러 작가들에게 보냈고, 그 그림을 본 작가들이 다시 짤막한 산문을 한 편씩 썼다. <<책그림책>>은 그 그림들과 산문들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그 중에서 책의 제일 앞 부분에 실린 그림 하나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림에 딸린 산문은 요슈타인 가아더라는 작가가 쓴 것인데, 제목은 <지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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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 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오른손에는 접은 우산을 든 한 남자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눈밭 같기도 하고 모래밭 같기도 한 야트막한 구릉들,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관목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텅빈 하늘, 그리고 땅과 하늘이 맞닿아 그려내는 지평선보다 조금 높은 곳, 고개가 약간 뒤로 젖혀진 남자의 시선이 향해 있을 법한 높이에 두툼한 책 한권이 두둥실 허공 중에 펼쳐져 있다. 오른발을 떼어 앞으로 옮겨놓고 있는 중인 남자의 자세나 남자의 뒤에 남아 있는 발자국들로 보아, 남자는 지금 화면의 안쪽, 지평선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요컨대 그림 속의 남자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중이고, 허공에서 펄럭이는 책의 페이지들을 따라 지평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이런 식의 묘사 속에는 이미 그 그림에 대한 하나의 독법이 들어 있다. 책, 독서 경험, 옮겨감, 적막함, 지평…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어떤 권태의 감정이다.
책-말이 이끄는 어떤 경험이 풍경으로 바뀌고 말없는 풍경 속에서 스물스물 배어나오는 단어들이 글로 바뀌듯이, 책과 세상 사이에도 끊임없는 순환의 여정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림 속의 남자가 향해 가는 지평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자의 발자국 몇 개가 그려져 있는 화면의 아래쪽,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뒤쪽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도식적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지평 뒤에는 무중력의 말들의 세계가 있을 것이고 남자의 뒤쪽에는 무거운 현실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중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안과 밖의 경계는 어디이고 책 세상의 안과 밖의 경계는 또 어디일까. 그러니 그 그림에서 내가 느끼는 권태는 그림의 풍경이 표상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독서 경험의 어떤 일방성’ 에서 생겨난다. 혹은 내 일상의 권태가 그 그림에 덧쒸워져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과 세상, 또는 ‘책 세상’과 ‘세상이라는 책’ 사이의 거리가 탄성을 잃은 고무줄처럼 느슨해질 때, 풍경은 입을 다물고 책은 무중력의 말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쪽에는 적나라하게 뻔뻔스러운 세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말들의 얽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