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콧물 |천운영|

누구나 그 애를 피해 다녔다. 그 애는 반에서 제일 더러웠으며, 공부는 제일 못했고 싸움은 제일 잘 했다.
얼마나 더러웠는가. 육학년이나 되었는데 커다란 콧구멍으로 두 갈래 콧물이 들락거렸고, 계절 내내 한번도 갈아입지 않았을 것 같은 구질구질한 체육복과, 코끼리 피부처럼 두툼하게 오른 목덜미의 때하며, 가끔 더러운 옷자락을 들치고 몸 여기저기를 긁적대거나 허연 살비듬을 털어 내곤 했었다.
수업시간의 그 애는 삐딱하게 앉아 콧물을 후루룩 들이마시며 만화를 그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의자를 뒤로 쑥 빼고 잠을 잤다. 매일매일 학교에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비가 오는 날이거나 월요일이면 곧잘 결석을 하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의 양에는 상관없이 언제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선생님이 물어오면 신발이 젖어서요, 우산이 없어서요, 비가 새서요, 심드렁하게 이유를 대고는 콧물을 훅 들이마셨다. 선생님이 우산을 쥐어 보냈는데도 빗방울이 듣는 날이면 어김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늘 구석자리에 앉아 형편없는 만화나 그리던 그 애가 때때로 폭발하듯 쌈박질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걸 지켜볼 때면 다른 남자 녀석들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어떤 공포감마저 들었다. 다행히도 그 애는 같은 반 아이들하고는 싸우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누구보다 순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편이었다.
더러운데다가 공부도 못하고 친절하지도 않은 그 애와 짝이 되길 원하는 여자애들은 없었다. 나 또한 다른 여자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뒤꿈치를 조절해 키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좀더 괜찮은 아이의 위치를 가늠하곤 했었다. 그 애와 짝이 된 여자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결국 제 엄마를 대동해서라도 짝을 바꾸었다. 그 애의 자리는 항상 창가 맨 뒤였고, 혼자였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는 날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니가 그 애랑 좀 앉아주어라. 여자 짝은 한번도 못했잖니, 너밖에 앉아 줄 사람이 없다.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왜 하필이면 나예요?, 싫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밖에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뭔가 큰 걸 베풀고 있고, 선생님의 특별한 신임을 얻고 있다는 우쭐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안됐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친구들이나, 굳이 그 애 옆에 앉힌 선생님이나, 그 애의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그 애에게 친절하지도 가혹하지도 않았다. 책상에 금을 가르지는 않았지만 도시락을 함께 먹거나 지우개를 나눠 쓰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계집애들 자리에서 놀았다. 그 애가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서 내 책을 가운데로 내미는 일도 없었다. 그 애의 옷자락이 닿을까봐 전전긍긍했었던 것도 같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 애가 흰 종이로 대충 싼 무언가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풀러보았다. 그 애가 쓰던 길이가 각기 다른 연필 두 자루. 뾰족하게 잘 깎여져 있는, 그 애가 가진 것 중 가장 깨끗한, 언젠가 불온선전물을 주워다 학교에 제출하고 받았던, 그래서 유난히 아꼈던 연필이었다. 포장지 안쪽에는 조그맣게 ‘짝궁에게’ 라고 써 있었다. 나는 우물우물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연필을 도로 포장지에 싼 다음 하교길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다 된 지금 다른 애들은 궁금하지 않으나 유독 그 애가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은. 비 오는 날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그 애가 보고 싶어졌다. 그 애네 지붕이 새지는 않는지, 우산은 있는지, 짝꿍은 있는지……
그리고 나는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전날 책상 서랍에 남겨두고 간 도시락 뚜껑을 열 때처럼. 내가 외면한 연필이 심을 뾰족하게 세우고서 쉬척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내 몸을 들락거리는 것이다. 더럽고 부끄러운 콧물처럼. 들이마셔도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콧물처럼.
* 소설가 천운영은 소설집 <<바늘>>을 펴냈다.
(200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