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유니폼들 |이광호|

솔직히 두 달 전만 해도 <사천만이 붉은 악마가 될 때까지>라는 광고를 보면서 마음껏 조소를 보낼 수 있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섬뜩하고 가당찮은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 사천만이 붉은 악마가 되리라는 우리의 선지자 한석규의 주술은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기적 앞에서, 나는 아직도 부적응자로 남아 있다.
이젠 익숙해졌지만, 한국경기가 있는 날 처음 몇 번은, 전철을 탈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전찰 칸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간 옷을 입고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마치 나 자신만 붉은 색을 입지 않은 듯한 강박적인 착각에 빠진다. 가슴에 <Be The Reds>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두르거나 얼굴에 페인팅을 한 사람들. 하다 못해 머리와 가방에라도 붉은 색 액세서리 하나쯤을 붙이고 나와야 한다는 자발적인 의무감에 다들 사로잡혀 있는 것만 같다. 한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함께 붉은 티셔츠로 통일한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경이로운 광경을 훔쳐보는 이방인인 나는, 결국 붉은 티셔츠를 한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이 역사적인 6월을 보내는 어설픈 자의식을 되씹는다. 그리고 가슴 <Be The Reds>라고 써있지 않고, 가령 <붉은 악마가 되자> 혹은 <빨갱이가 되자>라고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면, 과연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즈음의 압도적인 주류의 패션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애국심도 패션과 스타일로, 기호와 이미지로 표현되는 시대에 우리는 드디어 진입한 것이다. 패션은 문화적인 의사소통의 매체이며, 붉은 티셔츠는 이미 강력한 단 하나의 메시지를 서로에게 투사한다. 텔레비전 메인 뉴스의 앵커가 붉은 색 넥타이를 매고 붉은 색 원피스를 입거나, 아예 대표 선수들의 경기복을 입고 진행하는 파격조차도 몇 주 사이에 낯익다. 이 전시(戰時) 상황 앞에서 나는 그 군중적 제의와 거리의 카니발 안에 들끓고 있는 축제적 오르가슴의 에너지와 집단적 동일화의 열망을 성찰하지 못한다. 그 곳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매스 미디어와 스포츠 자본의 작동과 효과에 대해 분석하는 대신에, 나는 문득 내 생애의 유니폼들의 기억으로 뒷걸음질친다.
한국사회에서 한 사람의 정상적인 <애국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유니폼에 길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민지 잔재인 까만 교복의 마지막 세대인 나는, 그 교복의 호크를 끝까지 채웠을 때의 답답증과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동시에 기억한다. 사춘기의 내 들뜬 육체는 그 까만 교복 안에서 꽤나 단정했으며, 또 한없이 불온했다. 요즈음 고등학생들의 성인 양복을 어설프게 흉내낸 듯한 교복을 볼 때마다, 그 까만 교복의 강력한 매혹을 상기하곤 한다. 해군사관학교 복무시절, 새하얀 해군제복의 매력 때문에 사관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 시절을 결코 행복하게 추억하지 못하지만, 제복이 딱 어울리는 진짜 군인들의 <자세>와 스타일을 나는 아마도 부러워했을 것이며, 내 안에 깃들인 파시즘의 은밀한 황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제복의 시절을 통과하여, 제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에 안도하며, 기성의 체제와 제도 안에 안착했고, 그 안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제복의 시절을 혐오하면서도, 나는 그 제복의 허위적인 자부심과 스노비즘(snobbism)에 투항했고, 이제는 거기에 향수의 빛깔을 덧입힌다.
물론 지금 거리를 휩쓰는 붉은 티셔츠가 강제적인 제복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유분방하며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데 적극적이므로. 오직 붉은 색 안에서만! 그러니 그 취향의 민주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집단적 동일성의 요구를 의복으로 표현하는 유니폼의 매혹과 억압으로부터 멀지 않다. 유니폼 패션의 집단적 동일화의 기능은 그것을 입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구별과 배제의 효과를 산출한다. 그리고 그 붉은 색의 <자발성>이란, 모든 자발성의 신화가 그런 것처럼, 그것을 자발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구조의 소산은 아닐까?
이 열광의 나날 속에서 내 유니폼의 시절들을 떠올리며, 나는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실감한다. 나는 역시, 저 유니폼들을 질투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인 비평가 이광호는 평론집 <<위반의 시학>> <<소설은 탈주를 꿈꾼다>> <<환멸의 신화>>를 펴냈다.
(200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