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채영주를 추모함 |정찬|

채영주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는 믿기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긴다지만 영주의 죽음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6월 16일 오후, 집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다음 일요일에 채영주 씨 초대할까? 그때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영주가 하루 전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영주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금년 4월 초순이었다. 그 며칠 전 영주가 나에게 우편물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영주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된 <<무슨 상관이에요>>였다. 다음날 작업실에서 전화를 했다. 오랜만의 전화였다. 부인이 받았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갔다고 했다. 그녀의 서툰 한국말은 늘 듣기 좋았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영주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딸 스민이 아장아장 걷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영주의 나직한 목소리만 떠오른다.
얼마 후 영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여전히 맑고 부드러웠다. 요즘 어떠냐고 물었더니 위가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4월 16일 이사간다는 소식을 전한 후 집이 정리되면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영주는 빨리 위가 좋아져 형수님이 차려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주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정찬 선배라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이름을 떼고 그냥 형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정한 호칭이었다. 영주는 나에게 다정했다.
그날 저녁 집사람이 영주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전화했다는 것을 듣고 집으로 전화한 영주가 집사람과 통화한 것이었다. 영주는 집사람에게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던 위가 요즘은 악화되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보면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이사 소식에 자기도 조용한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집사람에 의하면 생활에 대한 강한 의욕이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가 밝았다고 했다.
아무튼 나는 이사 후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위가 안 좋다는 말에 조금 늦게 연락해야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렇게 홀연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슴이 아픈 것은 혹시 영주가 나의 전화를 조금이라도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5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일요일 오후 도봉산 산행 준비를 하다가 문득 영주 생각이 났다. 그전에 우리는 간혹 산행을 했다. 남진우, 하응백과 함께 한 산행에 영주가 조금 늦게 끼어들었다. 우리들의 산행은 남진우가 이사가고 하응백이 낚시에 몰두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
그날 나는 전화기로 다가갔다가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우선 혼자 산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산행에 익숙치 않은 영주와 함께 가면 내가 가고 싶은대로 못 갔을 것임이 분명했다. 초대하겠다고 했는데 초대는 하지 않고 불쑥 산행 가자고 하면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다 지금 전화하면 집에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는데 괜히 전화해서 방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잔졸스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영주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영주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6월 18일 오후였다. 그날 아침 나는 작업실을 향하면서 오늘은 영주에게 전화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아플 것 같다.

* 소설가 정찬은 <<기억의 강>>에서 <<광야>>에 이르는 8권의 소설집, 장편소설을 펴냈다.
(2002.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