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집에 있습니까 |류경|

그는 귀에 익지 않은 소리에 눈을 떴다. 높낮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비탈진 동네에 울리고 있었다.
는개가 내리는 조용한 아침이었다. 어쩌면 새벽녘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고개를 돌렸지만 자명종 시계는 머리맡에 없었다. 낯선 방의 창문은 열려 있었고 그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어젯밤 입었던 옷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어제 저녁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머리맡을 가린 종이 박스들 때문에 방안은 더욱 어둑했다. 빈 맥주 캔과 풀어헤쳐진 종이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 쌓인 책들은 쓰러진 캔에서 흘러나온 누런 액체로 젖어 있었다. 눅눅해진 담배꽁초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월요일이었지만 어차피 출근 데도 없었다.
무슨 소리일까. 일정한 리듬이 있는 그 소리는 수도승이 외는 염불 같았다. 그러나 목탁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30여 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새벽녘에 염불 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눅진한 대기에 산란되어 발음의 경계가 흐트러져버렸다. 어디서 나는지, 남자 한 명의 목소리인지, 두세 명의 목소리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한 골목에서 올라오는 소리 같기도, 복도 어딘가에서 울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목소리는 간간이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했다.
그는 다섯 평짜리 방을 돌아보았다. 문짝이 기우뚱한 싱크대 한 벌과 방 한가운데 늘어진 나일론 빨랫줄. 그리고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텔레비전 한 대. 그가 맨 먼저 푼 짐이 텔레비전이었다. 그는 늦은 밤, 방안의 무언가를 몰아내려는 듯 TV 소리를 키워두었다. 낯설고 텅 빈 방을 채울 것은 그 소리뿐인 듯했다.
그는 이사할 때마다 짐을 버려야 했다. 45평 아파트에서 25평으로 이사할 때는 아내와 나란히 앉아 연주하던 디지털 피아노와 이탈리아제 가죽 소파를, 13평 아파트로 이사할 때는 책상과 퀸 사이즈의 더블 침대를,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는 마침내 아내마저 내놔야 했으니 장롱이든 식탁이든 커피메이커든 하다못해 수저 세트까지, 혼수로 해왔던 물건들도 그녀와 함께 나가고 말았다.
목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웬일인지 라오스의 비엔티안에서 보았던 스님들의 탁발 행렬이 떠올랐다. 아내와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잠시 들른 도시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그는 자신의 잠을 깨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호텔 창가로 다가갔다. 축축하게 젖은 포도 위를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철 발우를 손에 든 스님들은 맨발이었다. 염불 소리도, 철 발우가 챙강대는 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밖의 기척에 눈이 떠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는 혼곤한 잠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염불을 외는 듯한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귀를 곧추세웠다. 비엔티안의 탁발 행렬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리듬을 탄 남자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복도에 또렷이 울렸다. 남자는 이렇게 외고 있었다. 집에 있습니까, 집에 있습니까. 그는 문득 자신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여기가 어디일까. 목소리는 이제 창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문을 밀어 젖혔다. 복도에 흩어져 있던 개똥 냄새와 함께 시큼한 땀 냄새 밀쳐들었다. 수많은 옷가지를 팔에 걸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청년의 땀 냄새에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세탁물 있어요?”
청년은 염불을 오래 왼 스님처럼 낭랑하게 트인 목소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왜소한 몸집의 청년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젯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한 스님의 말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집에 있습니까,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까?

* 소설가 류경은 2000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2002.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