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담배는 정말 숭고한 걸까 |조경란|

영화 「레퀴엠」을 본 날, 악몽을 꾸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다이어트 하는 사라도 마약에 미친 아들 해리와 그의 연인인 마리온도 아니다. 주인공은 인물들의 적, 바로 ‘중독’이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한창 절정에 올라 있을 때조차도 그들의 악몽과 같은 추락을 예감할 수 있게 한다. 너무나 정직한 건 폭력적이다. “해리는 어머니를 옷장 속에 가두었다”로 시작되는 레퀴엠의 원작 「Requiem for a dream」은 영화보다 더욱 폭력적이다.
체질적으로 담배가 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러나 지난 팔 년 동안 한 번도 금연을 시도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편이 아니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담뱃갑 속에 있는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의식과, 그리고 우리의 폐를 통과하여, 코를 킁킁거리게끔 만드는 그 희한한 연기가 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세계를 유혹하고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장 콕도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담배를 끊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삶의 한 형태이다.
나의 어머니가 외삼촌 앞에서 “저것이 그걸 먹는다는 생각만 하면 내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말한 다음날 나는 담배를 끊었다. 어머니가 말한 ‘그걸’은 바로 담배를 뜻하는 것이고, ‘먹는다’는 의미는 피운다는 것이다. ‘저것’이 지칭하는 것은 물론 나다. 하지만 내가 금연을 결심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신체적인 여러 가지 좋지 못한 변화들이 있긴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말이 많아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많아지는 게 아니라 짧은 문장을 말하는 데도 두서가 없어지고 중언부언, 중복하기 일쑤였다. 그 이유는, 바로 앞에 말한 문장을 그새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레퀴엠」을 본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발레리는 하루에 담배를 60여 개비씩 피웠고, 보들레르는 “나는 담배를 통해서 증발되기도 하고 집중되기도 한다”라고 하였으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르트르는 “사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라고 대답했고, 아폴리네르는 “나는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담배를 피우고 싶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밖에, 피카소와 뒤라스가 담배 피우고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금연을 당장 포기해야만 하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이유들이 생겨나곤 한다.
금연을 시작하고 나서 전동칫솔이라는 걸 하나 샀다. 흡연의 욕구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욕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시위하듯 스위치를 누르고 들들들들, 이를 닦는다. 내 의지로 시작한 금연이지만 비흡연자는 납득하기 힘든 묘한 상실감과 박탈감은 참으로 컸다. 연초를 싸고 있는 하얀 종이, 그 위에 세련되게 새겨진 글씨들, 불을 붙이는 짧고 환한 순간, 첫 모금을 빨아 당길 때의 아득한 현기증. 그리고 담배연기가 허공 위로 끝없이 올라갈 때 말없이 펼쳐지던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
가족들은 요즘 나를 금단에 시달리는 마약쟁이 취급을 한다. 어르고 달래고 동정하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워준다. 나보다 더 고통스런 표정을 짓기도 한다. 연초에 시작돼서 한풀 꺾인 금연 열풍이 이주일 씨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이미 금연을 시작했으니까 하는 말인데,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담배는 아름답기는 하되 긍정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든다. 굳이 맛을 분류하자면 그것은 ‘나쁜 맛’이다. 칸트가 말한 부정적인 쾌락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흡연자들은 담배를 빨아들일 때마다 작은 공포감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미묘하고 멋진 어떤 것에 의해 스릴을 느끼곤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흡연자들은, 매일 조금씩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이었나. 금연을 시작했다는 친구 얼굴에다 대고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던 일이 무척이나 후회가 된다. 그 친구는 한 시간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내가 이 금연을 성공할 수 있을까? 이걸 정말 기어이 해야 하나? 이렇게 일평생 담배를 피울까 말까 매일 십 분쯤 망설이며 살아야 할까? 담배는 정말 숭고한 것일까? 오늘도 들들들들, 이를 닦으면서 나는 심각하게 갈등한다.

* 소설가 조경란은 <<식빵 굽는 시간>>에서 <<코끼리를 찾아서>>에 이르는 7권의 소설집 및 장편소설을 펴냈다.
(2002.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