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감각과 예술에 대한 한 단상 |김진수|

모든 생물학적 종은 각각의 종에 고유한 감각과 지각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생물-심리학에는 시간 지각의 계기를 일컫는 ‘모멘트moment’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의 모멘트는 1/18초라고 한다. 이러한 지각 모멘트는 시각이나 청각, 촉각 등 인간의 모든 외부 감각에 적용된다. 시각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초당 18번의 단위 자극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우리 눈은 이 단위 자극들 각각을 분리된 것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전체로 지각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바로 이런 생물-심리학적 원리 위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눈은 초당 18컷이 순간적으로 교체되는 개별 스틸 사진의 연속을 ‘하나의 끊김 없는 동작이나 행위’로 지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당 18회의 공기 진동을 우리 귀는 따로 떼어서 듣지 못하고 하나의 일관된 저음으로 듣게 된다고 한다.
마냥 굼뜨기로 소문난 달팽이의 모멘트는 1/4초로, ‘전투어’라고 불리는 한 어족의 모멘트는 1/30초로 보고되어 있다. 그렇다면 ‘뿔 달린’ 기관을 가진 저 달팽이가 자신들의 영화관을 만든다면, 이 영화관에는 초당 4컷의 스틸 사진을 돌리는 영사기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겠다. 반면 1/30초를 모멘트로 갖는 전투어는 물 속을 재빠르게 유영하는 보다 작은 어족을 먹이로 삼는다고 하는데, 이 종에게 피라미의 수영 솜씨는 서툴기가 그지없어 언제라도 낚아챌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영화관에 들어간 달팽이에게 있어서는 ‘너무 빨리’ 돌아가는 영사기의 작동 탓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전투어에게 있어서는 조각조각 난 스틸 사진들이 ‘너무 느리게’ 교체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말하자면 1/4초의 모멘트를 갖는 달팽이에게 이 세계는, 우리 눈이 발사된 총알을 볼 수 없듯이, 너무 빨리 지나가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테고, 1/30초의 모멘트를 갖는 전투어에게 이 삶은, 우리가 꽃잎의 열림과 성장의 순간을 볼 수 없듯이, 너무 느리게 지나가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터이다.
비록 어떤 인간도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심리학적 감관 경험과 지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할지라도, 세계와 삶에 대한 인간 지각의 깊이와 넓이는 단순히 외적 감각(external sense)의 경험으로만 축소되지 않는 것 같다. 고도의 인간 정신 활동의 산물인 문학과 예술의 존재가 바로 이러한 점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문학과 예술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외적 감각의 실존적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18세기 취미론의 미학자들이 ‘내적 감각(internal sense)’이라고 불렀던 미적 감수성과 취미의 세련화를 통해서, 더불어 문학적 상상력의 깊이와 넓이를 통해서 인간 지각의 모멘트를 1/18초로 묶어놓지는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풀 한 포기 바람 한 줄기의 미세한 떨림에서도 세계와 삶의 우주적 상응 관계를 읽어내는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이 바로 이런 생물-심리학적 지각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터이다. 말하자면 문학과 예술은 저 ‘내적 감각’에 의해 삶의 시간을 제로에서 무한까지 응축하거나 확장함으로써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는 뜻이리라.

* 계간 시 전문 『포에지』 편집위원인 김진수는 평론집『사랑, 그 불가능한 죽음』과 낭만주의 연구서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를 펴냈고, 『미학사전』을 번역한 바 있다.
(200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