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발로 남은 그녀 |방현희|

그녀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거울 앞에 낮은 스툴을 갖고 가서 털썩 앉더니 치마 윗부분을 들추고 검은 부츠를 보여주었다. 지퍼 끝이 완전히 아물리지 않고 1.5센티미터 가량 벌어져 있었다. 너무 꽉 조인단 말예요. 모르겠어요? 그녀는 힘들여 지퍼를 내렸다. 살갗에 달라붙어 있어야 할 스타킹이 지퍼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일어섰다. 보세요. 그녀는 그의 눈을 쏘아보았다. 그가 혹시 눈을 다른 데로 돌리기라도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불평하는 것을 그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원래 그 부츠는 앞뒤 가죽의 재료가 달랐다. 정강이 부분은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싸여 있고 오금부터 뒤쪽으로 길게 발목까지는 얇은 스판으로 꽉 조여지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는단 말예요. 그녀는 벗은 발을 빙빙 돌렸다.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발목을 주물러주었다. 부츠 속에 다리 모형을 끼워서 늘려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천도 아니고 박음질이 된 가죽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은 그녀의 불평을 들어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잠자코 그녀의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도로 가져와 불평을 늘어놓은 구두가 줄잡아 네 켤레는 되는 걸 생각해보면 구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 건 지난 봄부터였다.
까만 바탕에 아주 작은 검은 구슬이 점점이 박힌 구두를 손에 들고 그녀는 밑바닥을 뒤집어보였다. 앞부리는 막혀 있고 뒤꿈치가 트인 뮬로 얼마 전에 그가 그녀에게 팔아먹은 구두였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면 구두를 팔아먹을 자격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그 구두는 밑창이 얇은데다 굽이 지나치게 뒤쪽에 붙어 있어 발바닥 가운데가 주저앉을 듯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덧붙였다. 게다가, 뒤로 발이 자꾸 빠진단 말예요. 그는 그녀의 불평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앞부리만 막혀 있는 뮬의 경우는 뒤로 발이 밀려나와 질질 끌고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검은색 가죽 끈을 가늘게 재단해서 뒤꿈치에 걸쳐줌으로써 그 건은 끝이 났었다. 그녀가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름이 시작될 무렵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빨간 끈이 단 한 줄 발가락 위로 걸쳐지도록 만들어진 굽 높은 여름 샌들을 골라 들었다. 신발을 신어보는 건지 그의 얼굴을 훔쳐보는 건지 아리송한 얼굴로 발갛게 수줍은 빛을 띠고는 몇 발짝 걸어보는가 싶더니 냉큼 값을 치렀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여름이 가기도 전에 구두를 손에 들고 와서 다짜고짜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고 엄살을 피웠다. 이 빨간 끈이 살을 파들어 간단 말예요. 그는 깜짝 놀라 발을 들여다보았다. 희고 고운 엄지발가락 바깥쪽으로 살갗이 떨어져 나갔고 새끼발가락에도 발간 물집이 잡혀 있었다. 가는 끈이 하나뿐이다 보니 늘어나지 않도록 조직이 촘촘한 천으로 만든다는 게 앞으로 쏠리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살 속으로 파고 든 것이었다. 차라리 늘어나는 가죽으로 만든 편이 나을 뻔했다. 그는 일회용 밴드를 가져와 그녀의 발가락에 감아주었다. 발가락 사이, 발등에서 내려와 갈라지는 골짜기에 손가락을 끼울 때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 새빨간 여름 샌들은 아무 수선도 해주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기분 좋게 돌아갔다.
그는 그녀의 부츠를 고쳐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다시 그녀의 다리에 부츠를 힘들게 끼워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아름다운 발이지만 발등의 아치가 높지 않아요. 그래서 발이 피곤한 거예요. 물론 그는 알고 있다. 그녀가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발등의 아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그녀의 불평을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발을 쥐고 일어섰다. 그녀의 뽀얗고 보들보들한 발이 냉큼 따라 올라왔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듯 발을 잡고 집으로 데려 갔다.

* 소설가 방현희 씨는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였고, <<문학·판>> 신인 장 공모 당선작 <<달 항아리 속 금동 물고기>>를 펴냈다.
(200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