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새해를 맞으며, 아픈 날 |조은|

오늘은 아버지의 칠순이지만, 아버지는 집에 안 계신다. 오래 전부터 오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자식인 우리들 중 누구도 아버지와 함께 자리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해외여행을 보내 드리려던 계획도 취소되었다. 아버지는 오늘과 관계된 것은 모두 거부했다.
어렸을 때 우리 형제들은 적의를 담아 말하곤 했다. 우리 아버지는 벌써 제주도에 열 번은 다녀오셨을 거야, 하고. 그 시절 아버지의 발길이 닿은 곳이 어디 제주도뿐이었겠는가. 지금도 수저를 놓자마자 어딘가를 다니다가 어두워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인데.
“너희 사촌 누구는 시댁의 잔치 때문에 부부가 이혼했다더라.”
떠나기 며칠 전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일하기 싫어하는 우리들의 게으른 속성과 집안이 북적거리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기심을 꿰뚫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집안의 평화를 위해 지나치게 인내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낯설고 조심스럽다. 원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통이 크고 선한 사람’이라는 말을 끼니보다 자주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둘러싸여 집안일이나 가족의 고통쯤은 가볍게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우리들은 아버지 때문에 가정이 얼마나 극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공간인지 날마다 깨달았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거친 자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결혼 적령기를 놓치는 것을 보면서, 이성의 전화라곤 단 한 통도 받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펄 펄 뛰며 결혼을 강요하면서, 아버지의 마음도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예고했던 대로 아버지는 칠순 전날 새벽 훌쩍 떠나 버렸다. 지팡이가 없으면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병든 어머니만을 데리고. 그분들이 어디에 가 있는지, 칠순은 큰 생일인데 든든히 드시기나 했는지, 왠지 우리들에게 내몰린 것처럼 지금쯤 스물스 노여움이 치받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어쩌면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이런 순간에 대비해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이 끼니 걱정을 하게 되자 그 많던 아버지 친구들의 우리 집 출입이 뜸해지는구나 싶더니 어느 순간 발길이 뚝 끊겨 버렸다. 아버지는 우리들이 굶주리는 것보다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을 더 가슴아파했다. 그때 우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런저런 이유로 세상사에 시큰둥해진 우리 형제들은 오늘의 이 상황을 확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쓰는지 서로에게 전화 한 통 없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며 당황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경제권이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 우리들 세대로 옮겨져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아버지 세대가 경제권을 쥐고 있을 때만 해도 집안 잔치에는 어디를 가건 왕복 차비에다 덤까지 얹어 받아오곤 했다. 잔치 때마다 돈 봉투를 들고 주인과 손님이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던 나는 그것이 우리 집안의 유별난 풍토라는 것을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경조사에 갈 때 ‘돌아올 차비는 그 집에서 줄 테니까’ 하는 마음으로 지갑을 탁탁 털어 예의를 표했다가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손님에게 차비를 주는 예의를 그토록 쉽게 잊어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경제권이 없는 아버지는 요즘 같은 잔치 풍토를 혐오하는지도 모르겠다. 형식적인 만남과 형식적인 인사들을 참아낼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버지의 칠순이다. 결코 어버이를 대하는 태도나 삶의 면면을 바꾸지도 않을 고집스러운 자식들이 저마다의 성역에서 오래 묵은 감정까지 뒤적거리며 아픈 하루를 보내고 있다.

* 조은 시인은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와 장편동화 <<햇볕 따뜻한 집>> 등을 펴냈다.

(200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