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김우영 사진전을 보고 |임우기|

[산문] 김우영 사진전을 보고 |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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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국인들은 거의 아파트에서 먹고 자고 생각한다. 도시인들은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일하고 다시 아파트 속으로 기어든다. 이 삭막하고 획일화된 도시적 삶은 지식인 또는 문화인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콘크리트 구치소’에 갇힌 문화인들은 이 거대 도시로부터 무차별로 획일화된 사유와 메마른 감각을 주입받고 부단히 쇄뇌당한다. 그래서 이러한 도시적 욕망의 괴로운 자의식이 곧잘 꿈꾸는 곳은 도시의 대척점으로서의 시골이거나 종교적 초월 공간이다. 그런 공간은 도시 탈출을 통한 새로운 삶의 공간이거나 도시적 삶과는 대립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시 대중들의 일반적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이다. 문화 예술인들이 도시를 탈출할 때 대중들은 이 욕망의 살벌하고 삭막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도시 속으로, 콘크리트의 살풍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성수대교나 청계천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젠 폐허다시피한 청계천 콘크리트 공간을 없애려는 서울 시청의 결정은 그 자체로서 도시는 자신의 폐허를 통해 생을 이어간다는 폭력적 역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즉 파괴와 폐허는 도시 개발의 불가피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도시적 욕망의 자의식은 늘 죽음의 자의식과 공생한다.

lim2김우영 사진전(일민미술관, 4월 24일부터 5월 8일까지)이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까닭은 단지 도시의 폐허와 도시적 욕망의 그늘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도시의 어두움을 다룬 전시는 많다. 그러나 김우영은 폐허가 된 청계천과 무너진 성수 대교의 잔해, 삭막한 미아리 텍사스 주변의 어지러운 콘크리트 건물들을

촬영한 흑백톤의 포지티브 통필름(lith film. 약 150㎝×100㎝)과 구름 낀 저녁 놀 혹은 밤바다, 꽃밭, 가녀린 나무가 자라는 나무 야적장, 무성한 녹색 나무들이 있는 아스팔트 따위 비근한 풍경들을 컬러로 찍은, 필름과 같은 크기의 인화지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버랩시킴으로써 도시의 불가피한 삶의 조건으로서의 폐허(죽음)와 그 폐허 속을 살아가는 도시적 욕망(삶)을 竝置시킨다. 그 병치는 일종의 ‘설치’인 데, 놀라운 점은, 이러한 흑백 포지(positive)필름(도시의 처참한 운명)/ 컬러 인화지(도시의 드라이한 일상사) 사이의 거리감과 오버랩은 보는 위치에 따라 그 둘이 뒤섞여 연출하는 이미지들이 수없이 변화, 수많은 새로운 感想들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그 거대한 필름/인화지의 병치는 우선 도시란 죽음의 메타포임을 암시하는 설치이다. 그러나 그 예술적 노력이 도시의 우울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데에 김우영의 깊은 예술적 성취가 있다. 도식적인 설명이지만, 죽음의 도시 풍경을 담은 흑백톤 통필름을 통과하여 동시에, 도시의 소박한 일상생활의 영역인 컬러 인화지의 세계를, 함께 바라봄으로써, 도시적 욕망의 처참한 죽음이 도시적 욕망을 성찰하게 하고, 마침내 淨化시키는 예술적 체험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갖게 한다. 도시 탈출이나 초월이 아니라 도시적 욕망의 짙은 그늘을 직접 찾아감으로써 그로부터 도시적 욕망의 정화와 재생의 빛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 이는 오늘의 한국 예술계가 얻은 드문 수확이며 귀중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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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4전시실 한쪽면을 온통 채운 싸구려 여관 여인숙 내부의 너절한 잡동사니 사진들의 집합은 이러한 김우영의 치열한 예술가 의식을 다시 한번 잘 뒷받침한다. 싸구려 여관의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아둠으로써 모두다 원색으로 프린트된 이 사진 집합 앞에 서면 도시 주변부적 군상들의 욕정의 비린내와 고린내, 악다구니 혹은 도시적 소음 따위가 보는 이의 코와 귓속을 파고든다. 그러나 김우영은 도시의 주변부적 욕망의 파노라마를 自然色으로 되살리기 보다는, 마치 색동옷 색감과 같은 原色으로 인화하였다이는 도시의 자연주의는 도시적 욕망의 더러움과 폭력성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낳기 쉽지만, 원색은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는 능동적인 이미지를 낳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욕망들도 저마다 소박한 꿈과 생의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비유컨대, 때론 순수한 설렘으로 소풍을 가는 도시의 누추하고 지친 욕망들에게 원색의 색동옷을 입히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도 앞서 보았듯 도시적 욕망(폐허 또는 죽음)을 통해서 도시적 욕망의 淨化를 꿈꾸는 깊은 작가혼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작가 정신은 예술의 정치 조직화, 세력화, 위선적 순수주의 혹은 리얼리즘 그와 등짝을 맞댄 저급한 예술 의식의 만연으로 특징지워지는 작금의한국 예술계의 경향과 운명에 대한 근래 드물게 볼만한 예술적 반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