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우리 마을의 일부일처제도 |김훈|

내가 사는 마을은 서울 외곽지역의 ‘신도시’이다. 이 세속도시에서는 웃음을 웃어야할 일들이 많다. 나는 우스울 때마다, 눈치 보지 않고 껄껄 웃어댄다. 이 마을의 요즘 중대 현안은 러브호텔이다. 중산층 주부와 교회신도, 환경주의자, 생태주의자, 성직자, 교사, 지식인들이 모여서 러브호텔이 창궐하는 사태를 고민하고 또 규탄하면서 시당국에 대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러브호텔은 불야성을 이루며 성업 중이다. 고객들에게 대기표 나누어주는 호텔도 있다.
교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섰고, 절도 늘어났다. 이 마을의 절들은 지붕의 용마루 선을 네온사인으로 장식하고 있다. 밤이면 러브호텔의 네온사인과 교회 십자가의 불빛과 절 지붕의 네온사인이 모두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어, 이 마을의 야경은 장관을 이룬다. 교회의 신도들은 점점 늘고 있다. 세속도시의 교회는 구원, 초월, 죽음, 세계의 종말 같은 어려운 종교적 문제들을 가르치기보다는 가정의 건강과 순결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말하자면, 세속도시에서 교회의 종교적 기능은 일부일처제를 강화하고 관리하면서 그 도덕적 바탕을 보존하는 것이다.
러브호텔은 숙박업소로 허가받은 편의시설이다. 그 안에서 미성년자 약취유인이나 매춘알선이나 강간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성인남녀가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서 ‘러브’를 하러 오는 사태를 시당국의 행정력은 단속할 길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러브’는 행정력으로 단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찰력이나 계엄령으로도 단속할 수 없을 것 같다.
러브호텔이 창궐하고 또 성업 중인 이유는 지나간 시대에 비해서 이 시대의 도덕이 특별히 타락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느 시대의 도덕이 다른 시대의 도덕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타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마을 주민들은 러브호텔 이용객들은 모두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주장이 이 마을의 도덕성을 담보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저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마을 주민들은 다른 마을의 러브호텔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또한 사실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서 러브호텔이 이처럼 번창하는 인류학적 배경은 대체 무엇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고도 자명(自明)하다. 인간이 일부일처제도에 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도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억압적이고도 반생태적인 문명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도는 인간의 자연생태계를 파괴한다. 일부일처제도는 새만금 방조제와 같다. 지구의 끝, 문명의 끝지점까지 삼보일배의 고행길을 가더라도, 인간은 일부일처제의 폭압과 야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존재다. 그래서 러브호텔은 밤마다 성업중이고 대낮에도 손님이 들끓는다.
텔레비전의 드라마가 허구한 날 삼각치정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도덕적 개탄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삼각치정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삼각치정에 손님이 몰리는 이유도, 인간이 일부일처제에 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각치정이야말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인 것이다. 나와 내 아내, 이렇게 두 사람만 등장하는, ‘이각’의 구도라면 생활은 될 수 있을지언정 드라마가 되지는 못한다. 드라마가 되려면 내 아내가 젊은 놈과 사랑을 속삭여야하고, 나도 젊은 애인이 있다면 드라마는 더 재미있어진다.
일부일처제의 내용이 무너져 갈수록 인간은 일부일처의 형식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 일부일처제도가 무너지면 문명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모든 민법과 혼인관계법과 상속법이 일부일처제도를 보호하고 있고, 그 많은 교회에서 성직자들은 매일같이 가정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의 존엄을 절규하고 있다. 그 교회들 사이에서 러브호텔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의 야경은 문명사적인 장관을 이룬다.
나는 이 장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인간의 본래 그러한 모습일 뿐이다. 내가 자주 가는 술집에서는 이 마을의 밤 풍경이 잘 내다보인다. 날이 저물면, 조심스러워하는 남녀 한 쌍이 탄 자동차가 러브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입구에는 비닐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이 비닐커튼은 위선과 기만의 장치다. 그리고 이 비닐커튼은 가정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시키는 일에 기여한다.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중년 사내가 픽업트럭에 핸드마이크를 설치하고 러브호텔 앞에서 호텔로 들어가는 남녀를 향해 외친다.
―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워 왔다, 라고.
그러니 나는 혼자서 낄낄 웃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혼자서 웃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너무나 많아서 다 웃을 수도 없다. 오늘은 이만 웃는다.

* 오래 동안 언론 활동을 해온 소설가 김훈은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3.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