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게시판 속으로 들어갔던 소녀를 그리며 |이진명|

D여자중고등학교.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에 이어 바로 본교 고교로 진학하던 때였다. 교정과 교문을 같이 사용했고 동산과 도서관도 같이 사용했다. 교문 내려가기 전 교정에 커다란 게시판이 서 있었다. 그 게시판이 중학교 3학년 열네 살을 살아온 한 여학생에게 아주 특별한 것을 선사했다. 하복을 입는 계절인 어느 하교길에 게시판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이후 그 게시판 앞을 매일 다가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시판 앞에서 무거운 책가방을 늘여 들고 팔이 아프도록, 다리가 아프도록 서 있게 되었다.
게시판에 붙인 커다란 하얀 전지엔 이런 알림이 있었다.

오늘의 연제 : 나(我)란 무엇인가
연사 : 무진장(無盡藏) 스님
주최 : D여고불교학생회

중학교 3학년인 나에게 ‘나(我)란 무엇인가’ 라는 연제란 암호문이며, 기호 부호 같은 외국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전람회에 가 알 수 없는 그림을 대하듯 모르는 채 읽는 추상화였다. 그리고 연사에 무진장(無盡藏)이란 이름은 또 무어냐. 무인도에 금괴라도 파묻어 놨나. 보물섬 숨겨 논 지도라도 찾나. 만화 같기도 하고 레슬러 이름 같기도 한 스님의 이름이 너무 요상한 거였다. 그러면서도 검은 매직으로 굵게 그린 그 글씨 그림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일시는 매주 토요일 방과 후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하교 게시판에 금주의 새로운 연제가 나붙었다. “오늘의 연제 : 자아(自我)란 무엇인가”, “오늘의 연제 : 참나(眞我)란 무엇인가”……
하얀 상의 하복에 곤색 후레아 치마, 단발머리의 여중생은 게시판 앞에서 암호문을 열심히 익히며 사랑하였다. 그 암호문 앞에 서 있으면 아주 멀고 깊은 낯선 느낌, 낯설면서도 몸 주위로 연하게 꽃피는 구름 같은 걸 느끼게 되는 걸 사랑하였다. 해독할 수는 없지만 뭔지 근사한 말 같다는 따위의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나도 빨리 본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불교학생회에 들었으면 하는 소망이 자랐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때까지 읽어본 책 속에서도 ‘나’라는 게 뭐라는 걸 가르쳐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 제목이 있다는 건 내가 나라고 누구나 당연히 알고 지내왔던 그 나를 참 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이었다. 중3때야 분명히 의식하진 못했겠지만 당연했던 나라는 것에 대한 어색해진 어떤 물음이 그 게시판 앞에 마냥 서서 깜냥껏 헤엄치게 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불교반에 가입신청서를 냈는데 내가 제일 첫 번째로 신청했다나. 불교반 지도교사가 기특했는지 회장을 맡으라 했다. 나는 ‘나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에 대한 얘기나 좀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만 크게 생각해 거절했었다. 거절했다기보다는 남 앞에 서야 하는 부끄러움이 순간 아찔해 도리질했던 것. 그 대신 ‘보리’라는 주보를 맡게 되어 그건 2학년 때까지 했다. 그 시절 다른 고교는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다닌 고교는 특별활동반 외에 종교활동반이 있었는데 기독교반, 가톨릭반, 도덕재무장반이 더 있었다. 모두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수년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불교서적, 명상서적, 그리고 최근 얼마 전부터는 마음공부 책들, 영성관계 서적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고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장사도 되는 것 같다. 팔만대장경처럼 분량 많고 한문투성이어서 접근이 어려웠던 불교가 불립문자, 교외별전에서 벗어나 일반대중에게 넘치도록 보급되고 있다. 나 중고등학교 때의 청소년 불교란 뒤떨어진 구식이어서 미국문화와 기독교문화의 번성 속에서 이물감마저 주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다.
얼마 전부터 불교, 명상, 영성 관계 책들을 수십 권 째 읽고 있는데 그것들이 나에게는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짓 나(假我)에서 깨어나 참나(眞我)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 ‘가아’도 ‘진아’도 문자로서나 알 뿐이지 여전히 헤아릴 수 없고 사는 괴로움도 덜어지지 않는 나. 그래도 내가 볼 걸 보고 들을 걸 듣고 알 걸 알았으면 하는 소망 하나는 중3 게시판 시절부터 있어 왔기에 이런 책들을 새삼 가까이 대한다고 위안해 본다. 혹자는 약한 사람들이 이런 쪽으로 많이 빠진다고도 한다.
아무튼 열거한 책들을 읽은 여파 때문인지 중3 시절 교정 게시판 앞에 한없이 서 있곤 했던 내 모습이 자주 떠오르곤 했다. 일부러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 왜 그랬을까. 어린 게 무슨 생각을 그 앞에서 하고 있었을까. 그러는 시간 속에서 무엇이 형성되었을까. 그 시절 의식하지 못하며 만들어진 어떤 장식(藏識)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내 삶에 미세한 대로나마 영향을 안 미쳤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시판 앞 내리쬐던 햇빛과 그 햇빛에 반사되던 하얀 하복 상의, 괄호 치고 넣은 한자 ‘아’자와 ‘자아’자가 여전히 생생했다. 하교길 애들이 교문 다 빠져나가고 텅 비는 운동장, 운동장의 반짝이는 모래, 어느덧 무거워져 오는 다리의 느낌, 그리고 찾아오던 어떤 노곤함까지 생생했다.
근데, 근데, 그 소녀, ‘나란 무엇인가’ 앞에 아프도록 서 있었던 하얀 교복의 열네 살 옛 소녀는 바로 ‘참나’ 속으로 들어간 찰나의 소녀가 아니었을까. 소녀가 게시판 속으로 들어가고, 게시판이 소녀를 먹고, 검은 매직 글자 ‘나란 무엇인가’가 소녀를 먹고, 소녀가 검은 매직 글자 ‘나란 무엇인가’ 속으로 들어간 찰나가 있었으리. 그때 소녀는 자기(가아)를 잊고 자기(진아)를 만나는 중이었을지도. 소녀는 지금껏 그걸 모르고 있었다. ‘나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기, 그때 오롯이 참자기를 체험중인 것이었음을. 나누어진 하나. 하나인 나누어짐. 소녀는 게시판 앞 시간 속에선 그걸 알 수 없었다. 거긴 시간도 없고 삶도 없고 사라짐도 없었으니까. 참자기만이 오롯이 생겨났지만 그 생겨났다는 생각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때의 소녀를 떠올리고 나니 상처하고 절에서 곁방 얻어 홀로 책 쓰고 지내신다는 불교반 지도교사도 그립고, 여전히 조계사 한쪽 방에서 칠십이 넘어서도 청청한 목소리로 포교에 여념 없으신, 조계종 포교국장을 오래 역임하신 무진장 스님도 그립다. 사실 무진장이라는 이름은 다함없이 감추어진 보배, 다함없이 저장된 보물을 나타내는데, 마음을 밝히는 불교에 아주 걸맞는 이름임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그리고 불교반 애들. 그런데 걔네들은 뭣 때문에 불교반이란 델 들었을까, 갑자기 그게 지금 궁금해지네. 지도교사는 청소년 포교에서는 드물게 알아주는 열성을 보였는데, 중이 된 애들이 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선배 하나가 중이 되어 지내다가 부모 손에 끌려 내려와서는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 다 좋은 일이다.
백년 가깝게 된 옛 여학교는 진작 강남으로 이사 갔고 그 자리는 아파트 단지로 확 변했다. 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 이진명 시인은 시집으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를 펴냈다.

(2003.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