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묻기, 대답하기, 배우기 |서하진|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그 궁금증을 적절한 표현을 써가면서 질문할 수 있는 나이가 일곱 살쯤인지 요즈음 막내는 부쩍 질문이 늘었다. 아니, 나와 함께 있는 동안은 거의 쉬지 않고 질문을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요? 사람은 누가 만들었어요? 나는 왜 언니랑은 샤워하면서 오빠랑은 안 해요? 사랑이(우리 집 강아지)는 왜 개예요? 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는 죽어요? 왜 죽어요?… 하는 종류의 철학, 혹은 생태학적인 질문이 있는가하면, 미국사람들은 왜 영어를 해요? 엄마는 왜 이름이 두 개예요? 엄마는 왜 어른인데도 맨 날 공부를 해야 해요?…하는 식의 사회학적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있고, 왜 아이들은 커피를 마시면 안돼요? 왜 텔레비전을 앞에서 보면 안돼요? 컴퓨터 게임은 왜 오래 못하게 해요?… 하는 등등의 한 숨 돌리게 하는 질문도 있다.
혹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나는 직업적 특성을 십분 살려서 이해하기 쉽게, 친절하고도 재미있는 답변을 해주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따금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것, 대답을 하려다가 ‘오잉?’ 하며 아이를 쳐다보게 되는 질문을 만나는 일도 생긴다. 최근 하루 한번쯤은 나를 그런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아이가 오늘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거짓말 한적 있어요?” 대체 무어라 답을 해 줄 것인가. 물론이지, 얘야. 엄마는 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왔단다, 라고 말할 수는 물론 없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늘 말해왔으니까. 아니, 전혀 라고 할 수도 또한 없다. 그 역시 새로운 거짓말이니 말이다. 으응, 그게 말이지, 하고 얼버무리려 하니 아이는 어느 새 눈치를 채고는 “그러니까 했다는 거예요, 안했다는 거예요?” 하면서 더 집요한 눈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우연일까, 아이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날이면 이상하게도 종일 그와 연관된 일들을 만나게 된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혹은 거짓말을 할까 말까 유혹을 느끼게 되는 상황. 특별히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더라도 아이의 질문이 한동안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이의 질문으로 인해 유발된 자기반성은 끝간 데 없이 계속되면서 나를 괴롭힌다.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가, 정직하다는 것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직한 것이 항상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등등… 한번 그런 생각에 빠지면 남편, 아이들, 학생들, 주변 모든 사람들을 향한 내 태도가 모조리 거짓으로 여겨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일도 심심찮으니 본래 진지한 것이 흠인 내 성격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나는 내가 아는 얼마 안돼는 정직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 화자가 부러웠다. 아니, 정직하게 표현하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스로를 정직하다고 말하는 인간이라니. 해서 책꽂이를 뒤져 영어문고판을 찾아내고 그 부분을 대조해 보기까지 했다. 그 원문은 이랬다. I am one of the few honest people that I have ever known.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으면서 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서너 명의 이름을 떠올렸고 장고(長考) 끝에 그 가운데 두 사람을 ‘내가 아는 정직한 사람’의 명단에 올릴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그 사람들의 이메일로 쪽지라도 보낼까 하다가 괜한 호들갑인 듯해 포기하고 그냥 이렇게, 이인성 선생의 방에 글을 올리기로 한다.
앞으로 나의 명단에는 몇 사람의 이름을 더 올릴 수 있을까. 언제가 되더라도 내 스스로의 이름은 거기 포함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있으니 나는 최소한 그만큼 만은 정직한 것일까.

* 소설가 서하진은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라벤더 향기>> 등의 소설집을 펴냈다.

(2003.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