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심리 |박철화|

우리의 문학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몇 있다.
우선 이야기의 전통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이 전통에 힘입어 적지 않은 대하소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그토록 긴 소설을 읽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그것 말고도 나이든 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 인생을 글로 옮겨 놓으면 소설 몇 권은 족히 나올 거라고들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일제 식민지 체험과 이데올로기 갈등, 분단과 한국전쟁, 부패한 정치권력과 민주화 운동, 산업화와 도시화, 가부장제와 여성해방 등등을 경험하며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을 겪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은 차고 넘친다.
또 노래의 전통 또한 그에 못지않게 강하다. 이 전통 덕분에 읽기가 쉽지 않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사실 쉽건, 그렇지 않건 간에 시집이 읽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먹고 살만한 나라치고 대중이 시집을 찾는 예는 없다. 들은 바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남미에서나 우리처럼 시집이 읽힌다고 한다. 하긴 그 나라들도 다들 사연이 많은 곳이다. 그렇다면 저마다 아픔이 있어야 시가 읽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풍경과 상처’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춤과 노래를 즐긴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각자의 피에 집단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노래에 대한 욕구가 시를 부르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도 시집은 여전히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한 동안 그 전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이야기 전통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 외의 소설은 잘 보이지 않거나,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심리 묘사는 대단히 서툴며, 상상력 또한 어떤 제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심리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뤄야 하는 연애소설의 경우에도 사건이 두드러진 대신,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심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혼란스런 삶이 타인의 마음에 대한 배려를 가능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산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하긴 사건이 주가 되는 추리 소설의 전통조차도 우리에겐 없다. 피의자를 데려다 고문(拷問)을 하면 쉽게 사건이 해결되는데 구태여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소설에서 심리 묘사는 빠지고 구구절절한 사연만 남는다.
시는 노래로서의 인식이 강해서 서정(抒情)이 압도적이다. 물론 한 시대 서사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예외적인 사건으로 그쳤다. 그래서인지 우리시는 유독 여성적이며, 때때로 감상적이다. 언어를 통한 존재 탐구와 세계 이해 대신 자아의 발산이 늘 주된 흐름을 이루어온 것이다. 서양문학에선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그 개화(開花)를 보고 넘어간 낭만주의가 아직도 우리 시 안에서는 극복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낭만주의는, 불행하게도, 인식과 탐구의 힘을 잃은 절름발이 낭만주의의 색채가 짙다.
그래서 우리 문학은 시의 서정과 소설의 이야기로 나뉘어 이상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이 기이한 틀을 깨는 것, 그래서 좁은 틀 속에서 근친상간을 거듭하고 있는 빈사(瀕死)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우리 문학의 출구는 거기 어디쯤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200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