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하품을 하면서 세계를 집어 삼킨다? |김명리|

잠자리 들기 전에 물 한 컵 마시는 식으로 소갈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작한 맥주 한두 잔이 요즘은 하루 건너뛰면 아쉬울 만큼 습관이 되다시피 했다. 순전히 자가진단이지만 알콜릭을 동반한 만성자살 징후를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도 대견하리만큼 주량과 완급을 적절히 조절해서 악성에 가까운 2시간여의 입면시간(入眠時間)을 1~20분대로 줄인 건 최근의 내 음주벽이 낳은 최고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즈음의 내 음주문화를 가무(歌舞)도 없고 지음(知音)은 없으되, 나로서는 더 이상 소중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수면제의적 음주’로 명명하기로 했다. 나 때문에 늘 잠을 설치던 내 옆자리 식구도 별반 염려스러운 기색이 아니다. ‘춘풍이 건듯 불어 녹수를 건너오니 청홍은 옷에 지고 낙홍은 잔에 진다’ 어쩌구 하는 시흥(詩興)은 순전히 입술 머금은 소리로만 내는 탓도 있으려니와, 냉장실 포켓에 남아있는 술이 없으면 ‘어, 없구만’ 하고 그만이지 이 엄동설한에 벌벌거리며 찻길 건너 신성(新星)슈퍼까지 한달음에 뛰어갈 정도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맥주 한 병을 혼자서 홀짝거리자니 신산스러울 때가 없는 것은 영 아니다. 그래서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읽는 습관 또한 길어지는데 시간대가 늦어질수록 책은 되도록 당도(糖度)가 낮은 것들로 한정하기로 했다. 수면보조용에 음주동반용인데도 불구하고 뇌리에 오래 남아있는 것들이 그 시각에 읽은 책들인 것을 보면 음주와 독서는 내적으로도 아주 긴밀한 유대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나름대로 역설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작의와는 상관없이 그냥 내 식으로 삶이나 문학에 은근슬쩍 대입시켜보고 싶은 속물근성을 발동시키는 구절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이번 구정 연휴에 차례상 물리고 남은 음복주 벗 삼아 다시 읽은 나츠메 소오세키(夏日漱石;1867~1916)의 소설《산시로(三四郞)》(1908)의 다음과 같은 구절.
“엥유우가 분장한 광대는 광대가 된 엥유우니까 재미있고, 코상이 하는 광대는 코상을 떠난 광대니까 재미있다. 엥유우가 연기하는 인물에서 엥유우를 감추면 인물이 아주 소멸해 버린다. 코상이 연기하는 인물로부터 아무리 코상을 감춘다 해도 인물은 기운이 충만하여 약동할 뿐이다.” (여기서 엥유우(1857~1930)는 광대, 코상(1849~1907)은 만담가로 둘 다 일본에서는 널리 알려진 예능인들이다.)
메이지(明治) 시대 동경의 풍속도가 곳곳에 배치돼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직관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소설《산시로》는 청춘교양소설이 흔히 지니기 마련인 자기도취적인 아나크로니즘에서 제법 멀찍이 물러 서 있다. 달콤새콤한 연애의 긴박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내 독서가 가담하고 싶은 자리는 인물들이 담기는 장소성과 그것의 시공간적 현재를 조밀하게 묘파해내는 작가의 집요한 시선이다. 어쨌든,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라쿠고(落語;만담) 공연을 보고난 후의 소감을 늘어놓고 있는 이 구절들을 되풀이 읽다보면 배삼룡, 이주일 식의 예명일 듯싶은 ‘엥유우’, ‘코상’ 하는 코맹맹이 이름들이 우선 즐겁다. 코상과 코상이 연기하는 인물들을 각각 소설가와 소설, 엥유우와 엥유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을 시인과 시로 바꿔서 읽어보니 더 신난다. 영혼에도 콧구멍-숨구멍이 있다면 거길 넘나드는 시나 노래는 단연코 엥유우的이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가/소설은 아무려면 코상 쪽이지 싶다. 펼치는 매 쪽에서 작가의 신변잡기가 유지(油脂)처럼 배어나는 소설은 식상해진지 오래, 자신의 뼛속에서 우려내지 않은 도통한 시들이 이제는 지겹다.
이러다 보니 한두 잔의 음복주가 서너 병의 맥주로 이어지지 않을 수야 없는 법. 천지간에 상장(喪章) 두른 듯한 이런 밤이면 ‘하품을 하면서 세계를 집어 삼킨다’는 샤를 보들레르 식으로 말이지, 저 광대무변한 우주의 별빛들, 눈썰미로나마 움켜쥐고 싶은 겨울 별자리들, 또 그 아래 꽝꽝 얼어붙은 2004년 대한민국 어둔 밤하늘을 속절없이 수놓는 저 전광판의 불빛들―찜질방, 노래방, PC방의 네온불빛들까지 하품 소리서껀 맥주 거품서껀 단숨에 들이켜는 시늉이라도 꿀꺽, 꿀꺽, 꿀꺽 한바탕 야단스레 내보는 것이다.

* 김명리 시인은 <<물 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를 펴냈다.

(200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