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종로1가의 명의 |김도언|

두어 달 전쯤 밤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왼쪽 팔꿈치를 강하게 땅바닥에 부딪친 적이 있다. 낙법을 익히지 못한 게 아쉬운 순간이었다. 다음 날 보니 팔꿈치가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 부어올랐다. 이후 여러 날이 지나갔지만 부기는 빠지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만져보니, 딱딱해야 할 팔꿈치가 물렁거리는 것이었다. 부기가 팔꿈치 전체를 동그랗게 덮고 있었 것이다. 난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왼쪽 팔꿈치를 우연히 만난 젊은 시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 시인은 물리치료사인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서 내 팔꿈치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 원인을 물어보았다. 시인의 와이프이며 물리치료사는 팔꿈치 안에 물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팔꿈치 안에 물이 있다니, 하하하! 소주 한잔! 난 술을 마시며 팔꿈치에서 어떻게 물을 빼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인과 헤어진 다음다음 날 나는 아주 이상한 의원에 가서 팔꿈치의 물을 빼냈다. 그 의원은 종로 1가의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개인병원이었다. 교보문고에서 필요한 책을 사고 골목길을 걷다가 그 의원을 발견하고는 별 생각 없이 들어갔던 것이다. 생각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의사는 70대 후반의 할아버지였고, 간호사는 30대 후반의 아주머니였다. 단 둘만 있었다. 시골 여객 대합실 같은 낡고 더러운 창구에 허리를 굽히고 건강보험증을 밀어 넣었다. 아, 그 허름하고 서민적인 병원의 내부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대기실도 없었다. 난 금방 의사 앞으로 인도되었다. 낡은 철제의자 하나가 의사의 책상 앞에 달랑 놓여 있었고, 간호사들의 가운은 깨끗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에 띌 만큼 때가 묻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옷을 걷고 왼쪽팔꿈치를 보여주자 늙은 의사는 물이 들어 있어서 빼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의 아내인 물리치료사의 진단은 정확했던 것이다. 노의사가 말했다.
“저쪽에 누워.”
“네.”
“그런데 왜 이제 왔어?”
“인연이겠죠.”
“인연이라고? 하하하. 재미있는 친구고만.”
의사는 눈이 어두운지 마취주사 바늘을 연방 헛 찔렀다. 아얏! 솜을 가져오라는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가지고 온 것은 붕대였다. 이상했다. 의사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리도카인 줘.”
“네?”
“리도카인 말야.”
“어디에 있어요?”
“저기 상자 안에 있을 거야.”
의사와 간호사의 호흡은 전혀 맞지 않았다. 의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저 간호사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자네가 이해해.”
마취주사를 놓고 드디어 물을 뽑을 큰 주사기가 등장했다. 그렇게 큰 주사기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으 떨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의 이름이겠지?
의사는 하지만, 놀랍게도, 감개무량하게도, 단 한번에 정확히 찔렀다. 찌르는 순간을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주사기 안에 내 팔꿈치에 들어 있던 물이 떨어져내렸다. 성공적이었다. 난 약 3분간 물을 빼냈다. 의사가 물을 싸줄 테니 집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또 물었다.
“왜 이제 왔어?”
“인연 때문이겠죠.” 내 그 말은 진심이었다.
팔꿈치에서 물을 다 빼고 오른쪽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고 나자 그 의사가 화타 같은 명의처럼 보였다. 의사가 내게 말했다. 직접 얼마를 환자에게 받아야 할지를.
“팔꿈치 물 뽑은 거 2만원. 주사 맞은 거 만원.”
난 무심코 현금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이게 뭐여?”
“카드로 계산하려구요.”
“여긴 현금만 받는데.”
“병원에서 카드도 안 돼요?”
“그런 건 큰 병원이나 하는 거지.”
내 지갑에는 현금 만 오천 원이 들어 있었다. 그뿐이었다.
“만 오천 원밖에 없는데요. 어쩌죠?”
의사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그것만 내고 나머지 돈은 다음에 여기 지나갈 일 있으면 와서 줘.”
아, 의사는 끝까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명의 중에 명의였다. 비록 환자대기실도 없고 손발이 맞지 않는 나이 든 간호사와 일하고 있지만, 그는 내 팔꿈치에 정확하게 대바늘을 꽂아 넣은 명의였던 것이다. 나는 만 오천 원을 간호사에게 내고, 씽긋 웃는 노의사를 뒤로 하면서 그 의원을 빠져나왔다. 골목길을 천천히 걷다가 두 번 뒤를 돌아서 의원을 바라보았다. 혹시 내가 앞을 보는 사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여. 난 오늘 팔꿈치에서 물을 뺐다. 물이 빠진 팔꿈치는 아주 잘생겼다.

* 소설가 김도언은 최근 첫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을 펴냈다.
(2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