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약속은 없다 |윤병무|

작년 봄,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동안 ‘열독률 1위’를 자처하며 광고를 쏟아냈던 국내의 한 일간지 1면에 AP통신으로부터 공급받은 흑백 사진 같은 컬러 사진 한 장이 체면치레하듯 실린 적이 있다. 아침 밥상에서 신문을 잡아든 나는, 그날 아침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듯, 혀 밑의 침샘이 아리고 목이 메여와 한동안 수저를 들지 못했다. 아빠와 함께 아침 밥상머리에 앉은 내 아이 또래로 보이는, 흙바닥에 다리를 뻗은 채 힘없이 앉은 아이를 제 가슴에 기대게 한, 이라크 민간인 포로로 보이는 피사체는 Christ의 머리를 둘러싼 가시관 같은 철조망 안에 ‘C’자로 놓여져 있었다.
아이는 아들이고 아이를 안은 이는 아버지였다.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으로 이제 더 익숙해진 검은 감자포대가 1년 전의 포로 머리에도 씌워져 있었다. 태양은 작열하고 아이는 일사병으로 정신을 잃기에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신발을 벗어놓은 걸로 봐―착하게도 벗어놓은 신발은 가지런했다―, 아이는 이 자세로 오래 있었을 거였다. 그 시간을 말해주듯, 졸지에 맹인이 돼버린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의 체온을 감지하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아버지의 왼손은 아이의 이마를 짚고 있었고 오른손은 언제 누가 다가와 데려갈지 모를 아이의 배를 본능적으로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아이의 반쯤 뜬 눈은 아주 아득한 곳을 향해 있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운 미국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침략해온 불꽃의 궤적을 보고 있는 듯했다. 아직 감기지 않은 아이의 눈은 그 어떤 논리나 입장이나 역사의 무한궤도보다도 먼저 근본에 닿아 있어 보였다.
미국의 상징 동물로 변해버린 이라크 하늘의 태양은 수의(壽衣) 같은 수의(囚衣)를 입은 아버지보다 아이의 검은 옷을 더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사진 속에, 엄마는 없었다. 사진 밖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곳으로, 엄마 곁으로 아이는 곧 가게 될 것만 같았다. 영화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군 탱크에 오른 아이와 철저하게 대비되는 그 이라크 아이는 훗날 조국의 역사를 회고할 수 없는 곳에 이미 떠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금 인류의 비극은 미국의 ‘묻지마 침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죽임당하고 갇히고 강간당하고 이별하고, 석유만이 아니라 모든 걸 빼앗긴 지구 저편의 인류는 마치 곰팡이에게 기생당한 곤충의 몸처럼 흰 부스러기만 남아 아직도 사막의 먼지로 흩어지고 있다. 그 황폐해진 땅에, 세계의 평화를 위한다는 새파란 행진에 성조기의 뒤를 따라 올림픽 개막식처럼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 행진의 도열에 맞춰 입장하게 될, 펄럭이는 태극기 곁에도 벌써 흙먼지가 된 이라크 주검들이 스쳐지나갈 것이다.
나는 두렵다. 그렇게 우리도, 사진 속 이라크 아이의 검은 눈동자에 담길 피사체가 될 것이 나는 두렵다. 그 이라크 아이가 바라볼 우리 군인들 중 어떤 하사관은 한국을 떠나기 전날 자신의 아이에게 애틋한 뽀뽀로써 작별인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이륙과 함께 자아를 압수해버리는 거대한 행진 속에 파묻히게 될 것이다. 이번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의 마녀가 돼버린 린디 잉글랜드와 같은 가해자들은 그 행진의 시스템이 철저히 만들어낸 것이니까. 그 시스템의 인과관계를 알든 모르든, 이라크 땅에 있는 그 누구든, 그들이 죽거나 살거나, 그 행진을 멈추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다.
“국제적인 약속”이라고? 어차피 약속은 없다. 그 약속은 이미 거짓말에서 시작된 거니까. 세계의 평화를 위한 게 아니니까. 세계의 평화를 위해 지켜야 할 약속과 반대되니까, 애초의 약속은 없다.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에도 그 어떤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더라도,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했다거나 할 약속을 지켜주지 않을 것임을 이번 이라크 전쟁에 휘말린 국제 사회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모하게 약속할 것도 없고, 옳지 않은 약속이라면 재고할 수 있는 사려와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매순간 냉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마음가짐의 긴장을 풀어놓지 않을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약속이어야 한다.
이제 믿을 건 우리의 정직한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그 에너지를 키움으로써 이 살벌한 지구상에서 살아남는 거다. 이제 세계 평화 어쩌구 하는 국제적인 명분은 확실히 물 건너갔다. UN의 바리케이드조차 미국의 거대한 워커발이 뻥 차버렸으니까. 그런 한없이 서글픈 세계사의 풍향계를 고정시켜버린 이번 이라크 침략 전쟁은 다시금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 윤병무 시인은 시집 <<5분의 추억>>을 펴냈다.

(2004.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