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관념의 빈틈에서 터져나오는 구토 |손정수|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다. 연변대학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참석이 애초의 목적이었는데, 마침 연변대학에 가 있던 소설가 K를 만나 함께 장춘, 하얼삔 등지를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회의 일정 동안은 그런 대로 편안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호텔에서 묵었고 식당에서는 거의 한국식에 가까운 식사를 제공받았다. 저녁에는 K와 함께 네온이 켜져 있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무대에서는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조선족 처녀가 이효리의 <10minute>를 부르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K가 연재하고 있는 만주 배경의 소설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문단에 대해 목소리를 돋우어가며 이야기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 일정을 씩씩하게 치러 나갔다. 한국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듯한 자유로움에 뿌듯한 마음마저 일었다.
회의 일정을 마치고 일행들이 모두 돌아간 후, 들뜬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획은 순조롭지 않았다. 가지고 간 달러는 큰 은행이나 호텔에서도 바꾸기 어려웠고, 기차표는 출발지가 아니면 살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을 도박하는 심정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준비해간 짧은 회화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날씨는 무더웠다. 배탈과 구토가 찾아왔다. 몸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났다. 음식은 맞지 않았고 현지인들이 하나씩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겁이 나서 엄두도 못 냈다. 우리는 그렇게 지친 몸으로 이끌며 장춘의 만주국 시절 건물들을, 마지막 황제 부의가 살았던 황궁을, 그리고 하얼삔의 성소피아 성당을, 송화강변을, 외국인 묘지를 찾아다녔다. 하얼삔에서 장춘으로 오는 기차칸에서는 거의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연변으로 돌아온 후 구토는 더욱 심해졌다. 창자까지 토해내는 느낌이었다. 학술회의에서 내가 발표한 논문은 일제 말기 만주를 방문했던 작가가 쓴 기행문과 소설에 나타난 무의식적인 식민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러한 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내가 내 관념 안에 머물러 있었을 뿐, 만주 속으로 한 발짝도 못 들어가고 있었음을 내 몸은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채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을 게워내면서, 채 소화되지 못한 관념들까지 모두 토해내야만 했다.
몸은 여전히 고달팠지만,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나는 엉터리 발음으로도 너끈히 물건을 사고 있는 나를, 줄을 서지 않는 중국인들을 욕하면서 불만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밀쳐내면서 표를 사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관념으로서의 만주가 아닌, 현실로서의 만주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경의 질감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기하게 구토는 멎기 시작했고 몸은 천천히 회복되었다. 그러면서 한국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에 거슬렸다. 머릿속은 다시 소음으로 채워졌으며 이마는 짜증으로 구겨졌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쳐야 할 원고 생각이 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예전의 나로 고스란히 돌아와 있다. 미뤄놓은 일을 해결하느라 허덕였고 겨우 계간지 원고를 마감했다.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리는 일상도 다시 반복됐다. 하지만 가끔 중국에서 겪었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옴짝달싹 못 할 정도로 갑갑할 때면, 그 끔찍한 구토의 기억이 그리워지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 관념의 빈틈들이 조금씩 숨을 쉬곤 한다.

* 비평가 손정수는 계명대 문창과 교수로서 <<미와 이데올로기>> <<텍스트의 경계>> 등의 평론집을 펴냈다.

(2004.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