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신에 관하여 |오은|

당신은 지금 외롭다 당신은 헐벗고 굶주렸고 춥고 아프다 머리가 지끈거리다가 무릎이 쑤시다가 발목이 결리다가 이가 시리다 당신은 지난 일 년 새 식구들을 죄다 잃었고 보험사기단에 걸려 단단히 쓴맛도 보았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절도 혐의로 쫓겨났다 뭇매를 맞고 교문 밖으로 내쳐질 때 말리던 선생님도 없었다 천사인 줄만 알았던 양호선생님은 침까지 퉤 뱉어주었다 어려울 때 전화할 친척들도 없었다 아니 친척들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하나같이 영구 결번이었다 당신은 통장 같은 걸 가져본 역사가 없고 우유급식을 해본 기억도 없다 저축일이 되면 새집 지은 머리만 자꾸 긁적였다 눈치 없는 새들은 비듬 같은 알들을 무턱대고 까댔다 기름진 비듬을 훌훌 털어내면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짝꿍이 결석했을 때 남은 우유도 당당히 차지하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였다 힘이 없어서였다 주변에 힘세고 용기 있는 친구가 없어서였다 오락실에 가도 동전이 없었다 지폐를 바꿔줄 오락실 주인이 없었다 사실은 동전이고 지폐고 돈이 없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바닥에 떨어진 동전 하나 없었다 돈 몇 푼 뺏기고도 울지 않는 꼬마들이 없었다 실은 일러바칠 엄마아빠 없는 꼬마들이 없었다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그간 당신은 터를 잡고 앉아 행인들의 관상이나 사주팔자를 봐주었다 전화기로 사진을 찍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점술 따위를 보려 하지 않았다 당신은 앞으로 뭐 먹고 살까 궁금했지만 정작 당신 자신의 점은 보지 못했다 사주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가끔 당신을 측은히 여긴 국밥집 주인이 시래기 듬뿍 얹어 국밥을 말아주면 당신은 허발을 하고 덤벼들었다 그 시래기들도 벌써 다 소화되고 없다 뜨스웠던 국물도 어느 담벼락에 스며든 지 오래다 국밥집 할머니도 이제는 죽고 없다 국밥집이 있던 자리엔 빙수집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당신은 지금 당장 퇴근하고 들를 단골술집 하나 없다 실은 다닐 회사가 없다 같이 술 마실 친구가 없다 술 마실 친구의 여자친구도 없다 그 여자친구 앞에서 잡을 폼도 없다 인연 같은 게 아예 없는 거다 근사한 양복이나 고급구두가 있을 리 없다 설사 있다 한들 입고 갈 데가 없다 당신은 오늘 낮, 마지막 재산이었던 토정비결을 팔아 빙수를 사먹었다 헐벗은 자에게 빙수는 무던히도 찼다 따라서 당신은 춥다 당신은 외롭고 방금까지 혀가 지독히 아렸다 무엇보다 당신은 지금 너무나 배가 고프다 당신,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지갑을 꺼낸다 그러나 아뿔싸! 당신은 지갑이 없다 지갑에 든 돈이 없다 이쯤 되면 당신이 슬플 이유는 충분하다 슬퍼서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당신은 당신이 눈물샘이 없다는 걸 안다 어떤 소설도 당신 인생만큼 슬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운도 참 없지, 당신은 글재주도 없다 콱 죽어버려서 보험금이나 타 먹을까? 아쉽지만 들어 논 보험도 없고 보험수혜자도 없는 당신이다 당신은 허영허영 슈퍼로 걸어 들어가 뜨신 호빵을 열쌔게 우겨넣는다 하얀 우유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켠다 놀란 주인여자가 경찰을 부른다 당신은 체포되고 욕도 한 사발 얻어먹을 것이다 아무도 당신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루팡이나 장발장이 아니다 친척들은 더욱 더 몸을 꼭꼭 숨길 것이다 혀가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배가 아프다 천사 같은 양호선생님이 루주 섞인 침을 당신의 엉덩이에 퍽 꽂는다 놀란 당신, 물고 있던 우유와 빵을 다 토해낸다

* 오은 시인은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하였다.

(200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