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하찮은 순정만화 |이신조|

얼마 전 우연히 아름답고 지적인(사실 이 조건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몇몇 여성들과 함께 ‘순정만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매니아까지는 아니었다 해도 나를 포함해 모두들 한때 순정만화를 열심히 탐독했던 ‘소싯적’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유쾌하면서도 사뭇 진지했다. 애독했던 순정만화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는 우리들은 흡사 옛 사랑의 추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아련하고 아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한 순정만화라는 텍스트가 자신들의 내면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 하는 객관적이고도 날카로운 분석들이 뒤를 이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남자들과는 순정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새삼스럽고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남자들과 고우영의 ‘삼국지’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에 대해 제법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러나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이나 김혜린의 ‘테르미도르’에 대해서는 아니다.
일반론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순정만화를 ‘우습게’ 안다. ‘무슨 눈이 얼굴의 1/3을 차지하는 거야?’, ‘8등신으로도 모자라 9등신에 10등신까지?’, ‘이렇게 여자보다 예쁘게 생긴 남자가 세상에 어딨어?’… 남자들은 일단 ‘순정만화식 리얼리티’를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순정만화는 곧잘 ‘계집애들이나 좋아하는 사랑타령’의 혐의를 받으며, 여자들의 현실감각을 현저히 떨어뜨려 놓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물론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지고지순한 꽃미남들을 현실 속에서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이 수려한 용모를 지닌,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그런 남자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재벌 2세이거나 귀족 청년이거나 최고의 스타이기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순정만화를 제외한, ‘남자들의 만화’ 역시 나름의 비현실성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원수를 갚으려는 주인공이 갖은 고생을 해가며 우연히 만난 고수에게 필살기의 무술을 사사 받는다든지, 죽도록 얻어터졌지만 끝내 17대 1로 싸워 이겼다든지,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은 주인공에게 미녀들이 줄을 선다든지 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로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만화는 ‘사랑스럽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대단한’ 만화를 접하고 전율하게 될 때가 있다. 순정만화 역시 그러하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이던 시절, 퀴퀴한 종이냄새가 나던 만화가게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만화 삼매경에 빠져들기 가장 좋았던 때는 바로 시험 기간이었다. 두세 과목 시험을 치르고 다른 때와는 달리 학교가 일찍 끝나면 독서실에 가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화가게로 향하던 발걸음. 문득 죄의식과 걱정으로 가슴이 죄어들 것 같으면서도, 조용한 가운데 파락파락 만화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대서사극을 표방한 순정만화를 유독 좋아해서인지 세계사 시험 점수만큼은 그나마 좋은 편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날, 나와 그녀들은 순정만화 속의 어떤 요소에 남다른 ‘필’을 받느냐 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섬세하고 가슴 떨리는 순정만화 특유의 디테일한 애정표현에, 또 누군가는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이었더라’라는 식의 순정만화 특유의 반전에 남달리 설레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고백하건대, 일찍이 ‘엇갈림’이 좋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 서로를 밥 먹듯이 그리워하다 우연처럼 스치고 엇갈리는 것을 안타깝게 반복하는 것에 나는 거의 중독 증세를 보이다시피 했던 것 같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헤어진 남녀가 어렵게 재회했지만 이내 다시 돌아서야하는 슬픔, 그럴 때면 뜨겁고 애절한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엉키고,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어서 열일곱이던 나는 종종 책장을 눈물로 적시기도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짐짓 진지하고 비장하고 너무 극적인 것을 동경하던 소녀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때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라 해도 그 소녀가 아직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순정만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은 드라마 ‘파리의 연인’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종영되었다. 시대에 역행하는 차원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대신 매주 일요일 밤 환갑을 넘긴 아버지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하는 표정으로 열심히 ‘파리의 연인’을 시청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아버지가 평생 단 한 권의 순정만화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화 같애, 말도 안 돼, 허허허’ 하면서도 그는 열심히 ‘파리의 연인’을 시청했다. 비록 주인공들의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끝내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에게도 ‘순정만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묻고 답하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난 내 아버지가 어떤 류의 순정만화를 좋아하고 어떤 장면에 가슴 떨려할 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것은 뜻밖에 중요한 물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찮은 취향에도 진정이 깃들여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진정에는 하찮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소설가 이신조는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기대어 앉은 오후>>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였다. 단편집으로는 <<나의 검정그물스타킹>>이 있다.
(2004.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