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교양의 죽음에 관한 결정적 장면들 |김경욱|

오늘날 교양의 죽음, 혹은 그 징후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사랑의 판타지를 슬쩍 뒤집기만 해도 교양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를 보자. 중학교 한 반에 두 명의 ‘이츠키’가 있다. 한 명은 무뚝뚝하고 엉뚱한 남학생, 다른 한 명은 새침데기 여학생. 같은 반 아이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반 아이들의 장난으로 동시에 도서부장이 된다. 그 후로 남학생 이츠키에게는 별난 취미가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학생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책만 골라 대출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의 이름도 적힌 적 없는 독서카드에 이츠키라는 이름이 하나둘 새겨진다. 여학생 이츠키가 부친상을 당해 학교에 나가지 못할 때 남학생 이츠키가 찾아와 책을 대신 반납해달라고 부탁한다. 여학생 이츠키는 며칠 후 등교해서야 그가 전학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십여 년이 지난 뒤 여학생 이츠키는 그때 그가 자신에게 반납을 부탁했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출카드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한다. 등반 도중 조난사고로 죽어버린 남학생 이츠키가 십여 년 전 그려 넣은 첫사랑이 비로소 ‘발굴’되는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비단 여학생 이츠키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감상을 절제할 수 있다면 눈물을 거두고 첫사랑의 ‘뒷면’을 보자.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출해간 사람은 이츠키를 제외하곤 단 한 명도 없었다. 첫사랑이 발굴되는 순간 교양은 ‘부관참시’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읽어보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것이 교양이다.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대출해보는 것이 교양이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은 ‘로드리게스과일먹이박쥐’만이 아니다.
<딥 임팩트(Deep Impact)>라는 영화가 있다. 뉴욕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든다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 이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유의 여신상이 해일에 잠기는 장면도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혜성과의 충돌을 결심한 ‘메시아’호의 ‘영웅’들이 화상을 통해 지구의 가족들과 최후의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재앙 앞에서 분투하는 인간 군상의 드라마를 통해 감동을 치밀하게 짜내는 이 재난영화는 정작 흥행과는 무관한 지점에 결정적 장면을 흘리고 있다. 지구를 향해 무지막지한 기세로 돌진하는 혜성을 핵미사일로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메시아호의 대원 한 명이 죽고 다른 한 명은 눈을 다친다. 이런 희생에 불구하고 혜성은 제거되지 않고 지구에 시시각각 접근한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메시아호의 대원들은 절망에 빠진 채 하릴없이 지구의 최후를 지켜보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때 메시아호의 선장이 침울한 정적을 깨고 입을 연다. “아무도 책을 가져오지 않았더군. 난 <<모비딕>>과 <<허클베리핀>>을 가져왔지. 혹시 자네 이 책들을 읽어 봤나?” 유감스럽게도 메시아호의 젊은 대원들 중 멜빌과 트웨인의 대표작을 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선장은 앞 못 보는 대원에게 <<모비딕>>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죽을 뻔했던 교양이 인류 종말의 위기 앞에서 가까스로 ‘구비전승’되는 순간이다.
사실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선장이 읽어주는 책은 <<위대한 개츠비>>거나 <<호밀 밭의 파수꾼>>이어도 상관없다. 교양은 <<모비딕>>을 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제거할 임무를 띤 우주선에 승선하면서 <<모비딕>>을 챙겨갔다는 사실, 절체절명의 절망 속에서도 눈 먼 대원에게 그 책을 읽어준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양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 김경욱은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 <<모리슨 호텔>> <<황금사과>> 등을 펴냈으며, 울산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