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김수영의 박인환 증오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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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EBS는 한국 문화사 시리즈의 제1편인 드라마 <명동백작>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11시에 방영한 바 있다. EBS가 맞나 싶을 만큼 화려한 출연진과 견고한 구성이 돋보였던 이 드라마를, 나는 주말 밤에 피치 못할 술자리가 있지 않는 한은 꼬박꼬박 챙겨서 시청하곤 하였다.
<명동백작> 속에는 1950년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문화예술계의 인사들이 등장함에도, 그 스토리의 포커스는 유독 문단 쪽으로 맞춰져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른바 한국의 몽마르트르를 대변한다는 명동시대의 주류가 바로 문인들이었으며,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을 지녔던 소설가 이봉구가 작품은 별로 안 쓰면서도 사교계의 오지랖이 방대한 위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긴 불란서의 미술과 독일의 음악이 전세계로 널리 퍼진 데에는 보들레르나 괴테 같은 문인들의 힘이 컸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글쟁이들 위주의 한국 문화사를 굳이 기형적으로만 몰아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명동 엘레지>>의 작가 이봉구는, 명동의 술집이나 다방을 배경으로 실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등장하는 일종의 사소설(私小說)을 주로 남겼다. 그는 <명동백작>의 더할 나위 없는 화자였던 셈이다. 1916년 생인 이봉구는 1983년에 작고하였다.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는,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명동과 슬펐지만 자랑스러웠던 그때의 벗들을 떠올렸을까?
아무튼. 적지 않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명동백작>은 우리의 문화사 전체를 낭만적 기조로 개관하려는 과욕 탓인지 캐릭터들의 내면파악에 간혹 가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는데, 내 눈에 그것은 김수영과 박인환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제일 유치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명동백작>은 마치 김수영이 박인환을 애증 내지는 연민한 것처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정이 병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다. 과연 이봉구스러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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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 번은 읽어야 한다는 끔찍한 소릴 세종대왕이 했다던가. 언젠가 짧은 서평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김수영 전집 2>>(산문)를 얼추 그렇게 읽은 것 같다. 누구는 자신의 관에 신약성경을 넣어달라고 하고, 누구 논어를 넣어달라고 그러던데, 또한 김수영의 아내는 김수영의 관 속에 평소 그가 열독하던 하이데거를 넣어줬다는데, 만약 좋아하는 책 꼭 한 권을 저승까지 챙겨가야 하는 것이 극락왕생의 필수조건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수영 전집 2>>(산문)을 고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지라, 나는 감히 이 책의 이면까지도 꿰뚫어 본다고 자부하던 터였으나, 그럼에도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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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2>>(산문)에는 김수영이 박인환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한 글이 두 편 실려 있는데, <박인환>과 <마리서사>가 그것들이다.
이 자리에서 그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로 시작되는 <박인환>과, “인환의 최면술의 스승은 따로 있었다. 박일영(朴一英)이라는 화명(畵名)을 가진 초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때 우리들은 그를 ‘복쌍’이라는 일제 시대의 호칭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복쌍은 사인보드나 포스터를 그려주는 것이 본업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인환이하고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쓰메에리를 입은 인환을 브로드웨이의 신사로 만들어준 것도, 콕토와 자코브와 도고 세이지[東鄕靑兒]의 <가스파돌의 입술>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트리스탄 차라를 교수하면서 그를 전위시인으로 꾸며낸 것도, 마리서사의 <마리>를 시집 <<군함 마리[軍艦茉莉]>>에서 따준 것도 이 복쌍이었다. 파운드도 엘리엇을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복쌍을 알고 나서부터는 인환에 대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흥미가 전부 깨어지고 말았다. 복쌍은 그를 나쁘게 말하자면 곡마단의 원숭이를 부리듯이 재주도 가르쳐주면서 완상도 하고 월사금도 받고 있었다(월사금이라야 점심이나 저녁을 얻어먹을 정도이었지만)”는 등의 폭로가 낭자한 <마리서사>를 통해, 김수영은 옛친구인 시인 박인환을 그야말로 처절하게 조롱하고 있다.
사실 김수영은 자신이 사후에 이토록 유명해져 있으리라고는 차마 예상치 못했을 터이다. 물론 1960년대의 그가 유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김수영이 한국현대시의 왕좌에 등극하기까진 충분한 문운(文運)이 작용했다. 1976년 계간 <<세계의 문학>>의 창간이 바로 그것이니, 그 잡지를 발행하는 민음사는 1974년 시선집 <<거대한 뿌리>>와 1975년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를, 1976년에는 다시 시선집 <<달의 행로를 밟을 지라도>>와 산문선집 <<퓨리턴의 초상>>을, 1981년에는 <<김수영 전집 1>>(시)과 <<김수영 전집 2>>(산문)를 간행하였으며, 2003년에는 그간 발굴된 산문들마저 모아 정본 개정판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농담이 아니라, 어쩌면 김수영을 키운 것의 3할쯤은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 계간 <<세계의 문학>>의 초대 편집위원 김우창‧유종호 선생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김수영 전집 2>>(산문)은 김수영에게 있어 김구의 선생의 <<백범일지>>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가령, 백범 김구의 테러리즘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것이 <<백범일지>>이듯, 김수영의 난해시들을 마치 서정시처럼 읽히게 만든 것이 <<김수영 전집 2>>(산문)이다. 백범은 <<백범일지>>로 이승만을 이기고, 김수영은 <<김수영 전집 2>>(산문)으로 한국의 다른 모든 시인들과 차별된다. 그리고 1982년에 <<세계의 문학>>이 제정한 ‘김수영문학상’은 김수영의 한국현대시 영구집권을 가능케 한 군대이다.
따라서, 1968년의 여름밤 버스에 치여 사망한 김수영은 자신이 쓴 글 두 편이 설마 이렇게까지 박인환을 한국문학사에서 영원히 개망신 주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했으리라. 이제 와서 과연 김수영이 어느 수준까지 박인환을 저주하려 했는지는 가늠키 힘드나, 여하간 우리는 김수영에 의해 끝없이 부관참시 되어지는 박인환의 가여운 운명을 목도해온 지 오래다.
펜이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복잡미묘한 김수영과 박인환의 관계를 떠나서, 당장은 폼잡고 떵떵거리는 어떠한 권세일지라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누군가의 고독한 글 한두 편에 의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음을 항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슬아슬하다는 점, 저 <반시론>의 서두에서 김수영이 갈파했던 문학의 “곡예사적 일면”에 다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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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은 1956년에 이상(李箱)을 추모한다며 연일 술을 퍼마시다가 죽어버렸다. 그때 이봉구는 박인환의 주검을 찾아가 그 입술에 조니 워커를 적셔주었다고 한다. 김수영은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1966년에 썼다. 내가 안개에 휩싸였던 것이 이 부근에서부터다.
김수영이 좋게는 검열 없는 산문가요 나쁘게는 이 갈리는 성격파탄자라 할지라도, 한때 절친했던(이봉구 같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하니까), 그것도 십 년 전에 고인이 된 동료를 모욕할 까닭이 있었을까? 보통 우리는 제아무리 혐오하는 자라 할지언정 정작 그를 글로써 공격할 적에는 으레 머뭇거리고 저어하기 마련이다. 특히 공격해야할 그가 이미 타계해버린 상황이라면 행동은 몇 백 배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칫 사람들에게 옹졸하게 비춰져 제 무덤을 파는 꼴이 되기가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범인(凡人)들도 그러할진대 중견 시인 김수영이야 말해 뭣하랴. 그렇다면 만인에게 야비하다며 손가락질 받을 가능성이 다분한 짓을 저지를 만큼 김수영은 바보천치였을까?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아무개씨의 지적처럼 그에게는 박인환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김수영 전집 2>>(산문)를 백 번 이상 읽은 나는 이제 이렇게 본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김수영은 박인환을 문학의 공적(公敵)으로 결론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박인환은 가짜 시인이었고, 태작기계였으며, 제 멋에 취해 예술을 오도하는 문화양아치였다. 고로, 김수영은 자신의 산문들 중에서 가장 공적(公的)인 태도를 견지하고서 문학의 섬세한 질서를 위해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의 박인환에 대한 감정은 연민이라든가 애증 따위가 아니라 완벽한 역겨움이자 순수한 증오였으며 그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공분(公忿)이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김수영은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쓴지 이 년 뒤에 죽었다. 그는 추호도 후회가 없었을 것이다.
1956년의 박인환은 술과 포즈에 절어 애처롭게라도 죽었지만, 요즘의 박인환들은 우리가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술책으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다.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 뻔한 나머지 우리로 하여금 맥이 빠져 전의를 상실케 만든다. 나의 이러한 짧은 이야기가 비록 김수영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아니라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이 새해,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무겁고 큰 치욕의 벌이 필요하고, 그래서 끝까지 망해버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터무니없는 태작을 태작이라고 비웃을 수 있는 당연한 미학적 기준과 양심을 되찾아 이 악취 나는 혼돈에서 깨어나야 한다.
2004년은 내게 김수영과 박인환 사이의 미스터리를 풀게 해주었고, 인정할 수 없는 것들과 늠름하게 투쟁해 나가야한다는 차분한 결론을 긴 분노의 터널 끝에서 선물해주었다. 나는 내가 지금보다는 훨씬 강하고 지혜로워진 어느 날, 쓸쓸했으나 아름다웠던 문단과 슬펐지만 자랑스러웠던 벗들의 문학을 떠올리며, 2004년에 관한 어두운 몇 편의 글들을 쓰게 될 것만 같아 두렵다.

* 소설가 이응준은 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무정한 짐승의 연애>>,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등을 펴냈다.
(2004.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