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장래 희망 |조하형|

<하나-비>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다: ‘절제의 과잉’이라고까지 불리는 정적, 불쑥 끼어들어 작렬하는 폭력, 그러면서도 유지되는 명상적 분위기.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틀림없이, ‘구로사와 아키라적인 것’과 ‘오즈 야스지로적인 것’, 사이에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시마 나기사 등에서 보여지는 장엄하고 격렬한 힘, 미조구치 겐지나 오즈 야스지로 등에서 보여지는 절제된 서정과 초월성. 기타노 다케시는, 그런 대비되는 강도와 속도를 가진 쇼트들을 자기만의 리듬에 따라 뒤섞는다 ― 불연속적이고, 비균질적이며, 예측불가능한 지점에 액센트를 찍는 리듬. 그러나, 그는 일본 영화의 두 가지 미학적 전통 사이에서 공통된 요소를 추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있을 리가 없는)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오직, 전통을 의식하면서도 전통을 자유롭게 횡단하는 변이의 선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영토를 생성시킨다.
그런데, 서론이 길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몇 년 전, 잡지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시니컬한 것, 엽기적인 것도 그쯤 되면,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우문현답’이 된다. 그 중 한 대목: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를 해준다면?
-누구나 되고 싶은 것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열심히 막 살다보니 어느 날 축구선수가 돼 있더라, 이런 것이 더 낫지 않은가……

*
어렸을 때, 지겹도록 듣게 되는 질문들 중 이런 게 있다: 커서 뭐가 될래?
나 역시 몇 가지 장래희망들을 생각해내야만 했고, 그 사이에서 진동하다가, 백수가 되어버렸다. 가령, 택시기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어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에게는, 택시 안이 아주 아늑하게 느껴졌고, 핸들을 돌리는 일이 아주 멋지게 보였으며, 사람들로부터 돈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래희망들 중에, 영화평론가나 소설가는 없었다(물론, 나는 아직 영화평론가가 아니며 소설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꿈은 좀 다른 것이었는데, 잘 되지가 않았다. 그 대신, 몇 가지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를 관통해갔고,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란, 솔직히 말해서, 가소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어오를 수 있는 글쓰기의 암벽은, 암벽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것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는 자는 글렌 굴드가 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나는 당분간 글을 쓰기로 했다. ‘당분간’이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 것. 그런 건 언어습관에 불과하니까. 1997년 이후로, 나는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이렇게 살면 안 될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은 하고 있다). 과거 전력으로 볼 때, 아마도, 언젠가는, 또 다른 엉뚱한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러면, 된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삶은 멋지다. 분명히, 멋지다. 그러나, 다양한 것들을 향해 열린 채로 헤매다보니 뭔가가 되어 있는 삶,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그러므로, 그냥 가기. 그냥 살기. 다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균열된 채로 그대로, 복수의 삶을, 다양한 삶을 살아내기. 항상, 이미, 몸을 가로지르고 초과해서 넘쳐흐르는 삶의 흐름들에 감응하기. 마주치는 우연/운명들을 긍정하며 변신하기. 그래서, 싸울 때가 있고 죽은 체하면서 무위도식할 때가 있으며 노가다를 할 때도 있고 글을 쓸 때도 있는 법. 살았고, 살아내다 보니 이런저런 짓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뭔가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기.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감응과 변용의 극한으로 간다면, 갈 수 있다면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처럼 존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궁극적으로는 얼굴을 지우고, 세상 모든 것과 연결, 접속 가능한 ‘하이퍼텍스트-몸’에 도달하기.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처럼 있기” ―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기묘한 화두.
아마도 그때,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그때 “남들의 주목을 끌지 않으며 관리인이나 이웃에게조차 알려지지 않고 존재하면서” 하이퍼텍스트로 환원되며 세계를 생성으로 만들 것이고, 아마도 그때, ‘아침’은 오직 내 심장 속에서부터 밝아올 것이다. 모든-사람-되기, 모든-것-되기, 심즉물(心卽物)……
그리하여, 지금 내 속에 있는 ‘아이’는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커서 뭐가 될래?
-무엇이든!

* 소설가 조하형은 2004년 <<문학·판>> 신인 장편소설 공모에 <<키메라의 아침>>이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2003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영화 평론으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