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한류’와 한국문학 |박성창|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이른바 ‘욘사마’ 열풍 탓인지 올해에도 ‘한류’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는 신년 특집으로 한류를 분석하는 글들이 실렸고, 얼마 전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한류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주로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류에 대한 논의가 한국의 전통문화나 고급문화로 확장되어 논의되는 것이 최근의 추세가 아닌가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나 한국문학을 세계무대에서 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들이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화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된 지금 이러한 논의들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만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류에 관한 논의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논점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한류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민족적 쾌거로 해석하고 문화적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시키려는 견해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무엇보다도 최근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구 대중문화의 수입국에 머물렀던 한국이 문화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류는 역사 이래로 문화적 발신자가 된 경험을 별로 갖고 있지 못했던 한국을 문화의 수신자에서 발신자의 위치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점에는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숨어 있으며, 이는 한국문학을 한류와 결부시켜 논의할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좀더 확대시켜 보면 ‘한류’라는 용어에는 크게 두 가지 경계해야할 논리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류를 한국민의 민족적 자부심의 발로로 해석하는 태도에는 마치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적 요소가 존재하여 이것이 다른 나라들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한국적인 그 무엇’을 부르짖는 공허한 목소리는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흔히 말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그 용어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 아닐까? 이 용어에는 마치 한국적인 어떤 것이 있고 이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놓여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또 우리가 일상생활이나 직접적인 문화체험에서 한국적인 어떤 것과 조우하게 되는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용어는 한국문학에 대한 일종의 ‘실체론적 접근’을 중시하게 한다. 이러한 실체론적인 접근법 속에서는 항상 지역적이고 특수한 어떤 것을 보편화시켜야 한다는 발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용어가 잘 드러내주듯이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은 일종의 관계망 속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개념들이다. 지역적이고 특수한 것이 먼저 어떤 실체로서 정립되고, 이러한 실체가 어떤 전략을 통해 세계화된다는 발상은 매우 단순한 발상이다. 정말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는 것이 중요하고, 한국문학을 민족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의 틀 속에 놓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관계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경계해야할 논리는 문화의 ‘흐름’에 관한 잘못된 전제이다. ‘한류’란 단어에 물결의 흐름이라는 ‘流’라는 한자가 들어가 있듯이 한류는 문화의 흐름과 이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신자의 입장에 있던 한국문화가 이제는 발신자의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는 발상에는 문화의 흐름을 종주국과 종속국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안에서 이해하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국가간에 이동하는 문화를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단일위계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한류는 겉으로 보면 우리 문화의 수출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문화의 소용돌이 속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문화의 흐름과 안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문화의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물결을 볼 수 있다. 한류라는 동아시아로의 문화의 흐름은 얼마든지 역류 현상에 의해 동아시아에서 우리로 되돌아올 수도 있으며, 이렇게 다양한 문화의 흐름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한 지점이 바로 우리 문화의 주소인 것이다. 민족주의 또는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문화를 바라보면 그것은 해류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와도 같다. 이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문화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염두에 두고 이 모든 현상들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우리 모두가 내면화할 때 흔히 강조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서울대 인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평론가 박성창은 평론집으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를 펴냈다.
(2005.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