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핸드폰 키드의 생애 |김소연|

서해바다에 갔었다.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백사장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오래 앉아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어 황금색을 산란하는 하늘과 바다와 태양을 찍었다. 황금색 실루엣을 지니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내가 양 팔을 고정시켜서 한 프레임을 잡아내는 동안, 내 프레임 안의 사람들은 팔을 뻗어 180도의 각도를 그렸다.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핸드폰으로 해지는 서해바다를 동영상으로 찍은 후, 아마도 친구나 연인에게 즉석에서 전송을 하리라, 생각됐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어디야?”가 “여보세요”보다 먼저 나온다. 모바일에 관성이 붙은 후에 생긴 습성이다. 어떨 때는 집 전화번호로 그 집에 걸고서도 “어디야?”라고 무심결에 묻는 실수마저 한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이 필요할 때에 이제는 라이터를 켜거나 성냥을 꺼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폴더를 연다. 가방 속에 지기들과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작은 수첩도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 핸드폰에 다 입력하면 된다. 핸드폰 벨소리는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반영하고, 문자메시지를 통하여 의례적인 인사와 간단한 의사소통도 한다. 초행길에 대해 길안내도 받고, 영화관람 예약도 대신하고, 결제도 한다. 친구들과 더불어 기념사진도 찍고, 미니 홈피에 올리기 위한 셀프사진도 찍는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핸드폰이 대개의 암시를 도맡는다.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대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고 있으면 연락을 받기 위해 초조해한다는 뜻이고, 한밤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애인이 있다는 뜻이며, 핸드폰 통화를 하며 씩씩하게 걸어 나가며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는 신사는 매우 잘나가는 바쁜 사람인 셈이다.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통신사가 해준 이후에는 전화번호와 동시에 액정에 뜬 호칭으로써 수신자가 발신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암시한다. ‘오빠’라고 적어놓으면 애인인 것이고, 이름 석자가 적혀 있으면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단 뜻이다.
나는 요즘 핸드폰 덕분에 산만해진 일상을 발견하고 반성하는 중이다. 어떨 때는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가 오곤 한다. 그 중의 몇 통은 광고성 전화이고, 그 중의 또 몇 통은 세일즈를 하기 위해 걸려온 전화이고, 또 그 중 몇 통은 독촉 전화이다. 이런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아내야 한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든,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고적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든, 지기와 술자리에 어울려 있는 시간이든, 식사를 하던 와중이든 간에, 전화를 받아야 한다. 물론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면, 소중한 연락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되느냐는 원망을 들어야만 하기에 더더욱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올해는 수첩이자, 비즈니스이자, 앨범이자, 스케줄관리자이자, 알람이자, 시계이자, 계산기이자, 지갑이자, 음악감상실이자, 나의 대인관계의 척도인, 나아가 나의 인사성을 대신하고, 내가 가장 손쉽게 세상을 열람하게 해준, 지루한 공백을 메워주는 장난감이자, 어디에 가 있어도 가족과 친구들의 사정거리 안에 존재케 했던 핸드폰을 없앨 계획을 세웠다.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으니 집전화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됐다.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후에는 승용차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또 그 이후에는 인터넷과 이메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리고는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획을 세워봤다. 얼마 전 일본에서 여든이 넘은 동화작가 할머니를 만나고 왔는데, 그분에게 편지를 썼다. 그분은 컴퓨터와 거리가 멀었기에 종이에다 펜을 꺼내들고 편지를 쓸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했지만, 편지를 쓰면서 안부와 고마움을 전해 내려가는 내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 기분이 썩 경건하고 괜찮았다. 글씨를 써서 편지를 써본지 너무 오래됐다는 회한까지 밀려들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서서 과감하게 핸드폰을 못 없애고 있는 중이다. 작고 예쁜 전화번호수첩을 사서, 핸드폰에 입력해놓은 전화번호들을 모두 옮겨 적어두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예행과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나가지 않는 기간을 겪어보니, 편리함을 버리고 불편함으로 귀화(?)하면서 자유를 쟁취(!)하는 일에 어쩐지 자신이 없어진다. 일단은 공중전화가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차가 막혀서 10분 정도 늦는다는 전화를 할 수도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놀자’라고 하며 즉흥적으로 보낸 연락도 받질 못했고, 긴급한 문자메시지나 음성메시지도 때늦게 접수를 했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심하게 결례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왜 핸드폰도 없니, 라는 원망을 감내할 생각을 하니 더더욱 결단이 서질 않는다.
(2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