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쪼그리고 앉은 아이의 빛 |허수경|

봄볕 아래 무덤 옆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가 있다. 쪼그리고 앉아 무덤 곁에 돋아든 새 쑥을 연필 깎는 칼로 자른다. 아이는 아직 세월을 몰라 손은 청동처럼 힘차다. 그때 빛이 아이에게로 온다. 갑자기 황포하게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이는 빛 속에 포획된 작은 짐승처럼 주춤하다가 바르르 떤다. 연필 깎는 칼은 아이의 나머지 인생에서 쑥을 자르는 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칼은 본래 연필을 깎는 직분을 아이 곁에서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아이는 그 칼로 무덤 근처에 파릇하게 돋아든 쑥을 잘랐다.
햇빛, 쪼그리고 앉은 아이의 허벅지에, 어깨에, 손등에 머리칼에, 잔혹하게 들어선 빛. 아이가 그 날 그 빛에 포획되지 않았다면 아이는 아마도 쑥을 자르는 손으로 계속 쑥을 찾으러 다니거나 밥을 하거나 혹은 이불을 개키고 빨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은 아이를 마치 태어나게 한 무슨 한 밤의 정사라도 되는 양, 아이의 근원을 따라 다닌다. 아이는 식물인가. 아니, 아이의 동물성을 완성시키는 것은 단 하나 빛이다. 빛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만일 그날 아이가 무덤 곁에서 쑥을 자르다가 그 빛이 너무 좋아 (그렇다, 좋다, 라고 쓴다. 슬프다, 혹은 아름답다, 아련하다, 그리고 선연하다, 라고 쓸 수 없는 실존의 나무관을 빛은 더러 짜기도 하므로) 옷을 벗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면 빛과 아이는 서로를 그냥 익숙하게 서로의 시간을 동반하는 유순한 벗으로 여겼을 터이다. 빛의 입장은 모르겠으되 아이의 입장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빛이 아이를 안았으므로 아이는 칼을 푸른 쑥이 들어있는 베보자기에 놓는다. 어른거리는 빛 안에서 아이는 가만히 얼마간 가만히 있다. 행여 자신을 안고 있는 빛이 달아날 새라 아이는 팔을 안으로 오두마니 해서 고개를 그 안으로 떨군다. 마치 그 안에 빛이 고여 있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숙인 아이의 바깥에서 빛은 더더욱 강하게 아이를 안는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혀로 아이의 스웨터를 더듬는다. 스웨터의 작은 구멍으로 혀는 들어간다. 혀는 붉은 내의를 지나 그 밑에 있는 어두운 아이의 살갗으로 간다.
아이가 깜짝 놀란다. 빛은 안타까워한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만일 아이가 스웨터를 벗고 내의를 벗는다면 어두운 살이 환해질 텐데, 저 빛의 혀가 살에 저의 정직한 욕망을 바로 부려 놓을 텐데. 아이는 스웨터를 벗는다. 붉은 맨드라미빛의 내의 속의 아이, 빛의 혀가 더듬고 있는 맨드라미색은 빛-혀의 입자들에 붙잡혀 한 색에서 자꾸 빛으로 저의 생존조건을 바꾸려 하고 있다. 아이는 내의를 벗는다.
빛은 아이의 작은 젖무덤과 겨드랑이와 배꼽을 지난다. 지나가면서 살 깊숙이 수많은 입자들을 보낸다. 그 작은 빛의 입자는 각각 빛의 혀가 되어 아이의 살갗 밑으로 들어간다. 살갗이 아니라 살갗 아래 아이의 욕망은 들어있었는지, 입자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아이의 살은 단단해진다. 아이는 입고 있던 치마를 들어올린다. 허벅지가 바로 빛 아래 드러난다. 빛은 마치 찬 바다를 헤엄치는 어린 정어리같이 날렵하게 허벅지로 온다. 저 빛의 혀, 수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빛의 혀는 순식간에 아이의 허벅지를 점령한다.
아이는 다시 가만히 있다. 너무나 많은 입자들이 아이의 살을 점령했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그 순간 아이는 가만히 마지막 입성을 벗는다. 그리고 벗은 옷 위에 드러눕는다. 빛은 아주 작은 짐승 같은 아이의 몸속으로 이제 들어온다. 빛에겐 아이의 작은 여자가 작은지 큰지, 아니면 그 작은 여자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없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냥 그의 무정형의 형태를 아이에게로 집어넣는다.
아이는 혼곤하다. 다만 빛의 여자가 되어 있다. 이 작은 의식이 끝난다면, 모든 의식이 그렇듯 아이는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연필 깎는 칼은 언제나 아이의 옆에서 연필 깎는 직분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다. 빛 없는 날에도, 빛이 아이를 잊고 아이가 빛을 잊어 그 둘이 잠자리를 더불어 하지 않는 수없는 나날 속에도. 그 곁에는 언제나 무덤이 있고, 무덤 너머로는 그 여자 아이의 동종이 벌이는 전쟁이 있고, 아프리카의 어느 아비는 물을 찾느라 하루 종일 덥고 어둑한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비의 곁에도 빛은 있었다고 한다. 그 빛과 아비의 관계를 해석하는 것은 다른 기회에 하자.
(2005.3.29)